문화

정책주간지 K-공감
꽃길 따라가면 무릉도원에 닿을까
'옛 그림이 전하는 지혜'

부산에 있는 금정문화회관에서 고양이를 주제로 한 전시회가 열린다고 해서 다녀왔다. 기차를 타기 위해 새벽에 일어난 탓인지 기차를 타자마자 곧바로 잠이 들었다. 1시간쯤 지났을까? 눈을 떠서 창밖을 보니 논밭에 붉게 물든 꽃나무들이 보였다. 복사꽃이었다. 기차가 달리는 속도에 비례해 복사꽃은 금세 시야에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한창 복사꽃이 필 계절인지 부산에 도착할 때까지 복사꽃은 그렇게 계속 이어졌다. 마치 꽃 터널을 뚫고 달려온 기분이었다.
부산에 도착해 미술관에서 작품들을 감상한 후 그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시기획자, 화가, 출판사 대표를 만나 함께 점심을 먹었다. 식사 후에 오륜대에 있는 회동수원지를 한 바퀴 돌아보게 됐는데 벚꽃이 절정이었다. 벚꽃은 바람이 불 때마다 눈처럼 휘날렸다. 수원지에 떨어진 꽃잎들이 수면과 함께 흔들렸다. 기차를 타고 오면서 봤던 복사꽃 풍경이 겹쳐졌다. 마치 그 꽃들이 바람에 휘날리다 물에 떠내려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기차에서 봤던 꽃밭에 가 닿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런 생각을 나만 한 것이 아니었다. 1600여 년 전 중국 동진의 작가 도연명(365~427)이 원조였다. 그가 쓴 ‘도화원기(桃花源記)’를 보면 환상 그 자체다. 어느 날 한 어부가 강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는데 물결에 복사꽃이 떠내려왔다. 그래서 배를 타고 복사꽃이 내려온 방향으로 강을 거슬러 올라가자 동굴이 나왔다. 동굴을 지나자 그곳에는 세상과 절연한 채 살아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곳에서 여러 날을 보낸 후 집으로 돌아왔다. 얼마가 지난 후 다시 그곳을 찾아 나섰지만 찾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안중식, ‘도원행주도’, 1915년, 비단에 채색, 143.5×50.7㎝, 국립중앙



안중식(1861~1919)의 ‘도원행주도(桃源行舟圖): 배를 타고 복사꽃 마을을 찾아서’는 도연명의 환상을 붓으로 그린 것이다. 그림 우측 상단에 적힌 제시를 보면 도연명의 글을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당나라 시인인 왕유의 시를 적었다. 그림을 보면 지그재그로 흐르는 강의 양쪽에 마치 어부를 환영하듯 복사꽃이 피어 있고 어부는 꽃의 근원지로 들어가기 직전에 있다. 복사꽃을 제외하면 각진 형태로 주름진 청록색 산이 화면을 채우고 있어 이곳이 현실세계가 아니라 환상세계임을 암시한다.

이광사, ‘도원’, 지본담채, 29.4×43.6㎝, 개인소장



안중식이 이 작품을 그릴 때가 1915년인데 그는 이 작품 외에도 여러 점의 도원도를 남겼다. 일제강점기의 현실이 고달파서 그림에서라도 마음의 위안을 얻고 싶어서였을까? 도원도는 조선 초기에 안평대군의 꿈을 그린 안견의 ‘몽유도원도’ 이후 이하곤, 이광사, 원명유, 김수철 등 많은 작가가 소재로 삼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그들이 도원도를 그린 이유는 다르겠지만 가장 현실적인 종교인 유교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살면서도 환상적인 세계에 대한 동경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물며 지금 세상에서 복사꽃을 보며 잠시 딴생각을 하는 것이 무슨 대수이겠는가. 그러니 꽃이 피는 동안은 마음껏 딴눈 팔며 정신을 쉬어보리라. 모든 창작은 쉼에서 비로소 시작된다고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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