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질투에 대한 소고
'글. 이정연'

'질투는 속이 빈 곡창에는 숨어들지 않는다.' J.W 괴테가 한 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질투를 한다. 때로는 여봐란 듯이 또는 음흉하고 은근하게. 총각선생님을 사이에 두고 두 여학생이 벌이는 질투는 평생에 걸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승진이나 상사의 신임을 두고 샐러리맨이 벌이는 질투는 술좌석에서 주먹다짐으로까지 발전하기도 한다.
중학교 때였다. 나와 성적이 비슷한 한 친구가 있었는데 이 친구의 질투는 귀찮다 못해 무서울 지경이었다. 시험을 앞두고 둘 다 시험공부를 하지 말자고 약속을 했는데 학교에 갔더니 왜 약속을 깨고 공부를 하냐고 난리였다. 나는 밤새 불을 끄지 않고 잠드는 버릇이 있는데 오해를 한 것이다. 그 친구는 새벽에 잠도 자지 않고 내가 공부를 하는 지 안 하는지 확인하러 온 것이다. 도대체 밤에 몇 차례나 그렇게 다녀갔나 싶은 생각이 드니 오싹 소름이 끼쳤다.
또 한 사람은 금융회사에서 일하는 K씨였는데 어느 날 업무 때문에 저녁을 산다고 해서 만났더니 눈가에 피멍이 들어있었다.
"아니 다 큰 어른들도 누구랑 싸워요? 도대체 얼굴이 왜 그런 거예요?" 하고 물었더니, "아 이거요? 어제 Y대리랑 세게 한 판 했어요!"하는 것이었다. 회사 동료와 술김에 싸웠는데 그 동료가 하는 행동이 사사건건 질투로 사람을 괴롭게 한다는 거였다. 자신은 서울에서도 알아주는 K대를 나왔는데 청도 촌구석에서 태어나 겨우 지방대를 나온 녀석이 승승장구하며 상사의 신임을 독차지하고 있다는 거였다. 늘 눈엣가시였는데 마침 술김에 싫은 소리를 하길래 한 방 날렸다는 것이다. 남자들의 질투는 이렇게 좀 더 과격하고 직접적이다.





나도 이따금 질투를 한다. 그렇다고 나 보다 잘난 사람 모두를 질투하는 것은 아니다. 나보다 얼굴이 예쁜 사람 돈이 많은 사람은 나의 질투의 대상이 아니다. 못생긴 거야 화장술로 가릴 수도 있고 또 마음만 먹으면 성형수술도 가능하고 돈이 많다고 해서 다 지혜롭게 잘 쓸 줄 알게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오히려 그 미모나 돈 때문에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를 흔히 보았기 때문이다. 미인은 옷 버릴 까봐 자주 힘든 일을 못하고 돈을 꾸어서라도 미장원을 다녀와야 하는 실수 따위를 저지르기 때문이다. 또 돈이 많은 사람이 밥을 한 번 사려면 그 사람의 돈은 늘 예금통장에 있기 마련이다. 예금통장으론 껌 한 통도 살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미인이면서 마음이 예쁜 사람이나 돈이 많으면서도 생색내지 않고 적시적소에 지혜롭게 쓸 줄 아는 사람에겐 당연히 질투를 느낀다.
그러나 미인도 아니고 돈도 없으면서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멋진 사람, 같은 사물을 보았을 때도 나보다 더 멋진 표현을 하거나 내가 미처 느끼지 못한 아름다운 가치를 발견해 낼 줄 아는 사람에겐 두고두고 주눅 들고 질투가 난다. 특히 같은 여성이면서도 이성에 대한 사랑보다는 우정에, 우정보다는 모든 사람에 대해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자존심을 배려하는데 그 무게를 두고 행동하는 사람에겐 존경과 함께 감당 못할 질투를 느낀다. 나는 그런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예의 주시하며 같은 현상을 두고 나와 어떻게 다른 생각, 다른 행동을 하는지 유심히 살핀다.
질투는 남과 비교한 나의 열등감 그 뒤에 숨겨진 존경심 같은 것이다. 내가 잘 할 수 없는 것, 미처 생각지 못한 좋은 행동을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하는 사람에게 나도 몰래 느끼는 부러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몹시 질투심을 느낄 만한 존경하는 사람이 그 믿음에 대해 실망을 안겨 주었을 때 우린 그 질투심이 사라진 속 시원한 기분 뒤에 아이러니컬하게도 존경심에 걸었던 신뢰와 기대가 무너진 낭패감을 함께 맛보는 것이다.
또 질투는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언젠가 남편의 회사에서 재미있게 회자된 사건이 있었는데 퇴근시간만 되면 동료의 아내가 매일같이 회사 앞에 아이를 업고 가서 남편을 기다리곤 했다는 것이다. 일망치고 부부의 금슬도 망치는 일이다.
동료와 실력이 비슷한데 외모 때문에 번번이 일에 차질을 주고 면접에서 낙방하는 사람이나 외모 때문에 사랑하는 연인을 잃을 위기에 놓인 사람이 성형수술을 한다면 진심으로 박수를 보낼 일이다. 선생님께 잘 보이기 위해 해당 과목의 공부를 잘 하려고 학원에 등록하는 학생은 업어줄 일이다. 동료보다 더 나아지기 위하여 새벽 혹은 밤 시간에 영어회화를 배우러 다니는 사람에겐 술을 사줄 일이다. 이런 질투는 질투에서 오는 에너지를 자신의 향상심을 위해 아주 바람직하게 승화시키는 경우이다.





질투란 누군가가 나보다 나은 상대라는 것을 느끼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렇게 되면 우선 내 자신의 문제점에 한 발 다가서게 되는 것이고 문제를 알았다면 이미 절반을 이룬 것이나 다름없다. 세상에는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조건적인 질투를 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 사람의 질투는 자신을 향해 찌르는 가시 그냥 저급한 질투일 뿐이다. 질투를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질투와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내게 온 질투와 부딪혀 정면으로 승부를 걸어 보는 것이다.
아름다워지기 위해서 성형외과에 진료예약을 하고 친구보다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학원에 등록하고 동료보다 빨리 진급하기 위해 그 업무에 대한 책을 읽거나 관련 기사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질투하자. 동료를 질투하고 친구를 질투하고 이웃을 질투하고 세상을 질투하자. 더욱 당당하게.

EDITOR 편집팀
이정연 작가
이메일 : manjuyeon1@hanmail.net
2003년 4월 수필문학 등단.
2004년 중부매일신문 세정유감코너 짧은 수필 집필 (1월-4월까지)
2004년 여름호 수필 ‘망월사에서’ 에세이문학 등단
2004년 영남수필 회원 –2019년
2006년~2008년 에세이문학 올해의 수필 20선 추천
에세이문학 수필과 비평 에세이21 수필사랑 대구문협지 다수 기고
2011년 - 현재 대구 달서구 현대힐공인중개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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