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고향의 샘
'글. 이정연'

삼십 오년이나 지났는데 날 기억해 줄 수 있을까. 아니 기억하는 건 고사하고 서로 알아볼 수 있기나 할까. 시제 지내러 고향에 가는 차 안에서, “이번엔 경자도 온다네!”하고 언니가 무심히 한 말에 수많은 꽃봉오리들이 내 가슴에서 다 터지는 것 같았다.
언니와 동갑내기인 경자아지매는 우리 옆집에 살았다. 천식이 있어 그 해 겨우내 자지러질 듯 기침을 하더니 내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쯤 대구로 이사 갔다. 엄마 치마에 얼굴을 묻고 울던 나를 버려두고 봄바람처럼 가버렸다. 혹시나 경자아지매가 돌아온 것은 아닐까 자주 빈집을 들여다보았다. 무섭도록 조용한 집, 창호지가 뜯겨나간 문이 바람에 닫히는 소리에 깜짝 놀라 ‘경자아지매’하고 불러보면 빈 집을 울리는 메아리만 쓸쓸했다.





나는 유년시절 대부분의 시간을 경자아지매와 보냈다. 경자아지매는 들일 때문에 바쁜 언니들을 대신해 기꺼이 언니가 되어 함께 놀아주었다. 여름이면 뒤란에서 자두를 따먹고 겨울이면 누룽지나 콩 볶은 걸 먹으며 아랫목에서 실뜨기를 했다. 잔심부름이 있으면 둘이 함께 하고 가을엔 보리논에 따라가 나래를 타다가 소가 갑자기 날뛰는 바람에 나래에서 굴러 떨어져 온통 얼굴을 갈아 놓기도 했다. 그 때 흙투성이가 된 경자아지매는 나보다 많이 다쳤는데도 옷소매로 내 얼굴을 닦아주며 울었는데, 그 기억은 고향을 떠올릴 때마다 불씨처럼 훈훈하게 내 가슴을 데워 주었다.
지금도 옛날처럼 여전히 수줍음을 많이 탈까. 고향마을이 가까워질수록 가슴은 점점 더 뛰었다. 일 년 만에 다시 만나 제각기 회포를 풀고 있는 인척들 틈에서 두리번거리다 경자아지매를 발견했을 때 좀 실망했다. 나는 비록 눈가에 주름이 잡혀 생의 한 가운데를 지내는 중년 여자일 뿐이라도 경자아지매는 절대로 늙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단발머리를 얌전하게 귀 뒤로 넘기며 언제든 반갑게 나를 맞아, 낡은 스웨터의 털실을 풀어 뜨개질놀이를 하거나 양말목을 잘라 콩주머니를 기워주던 수줍은 소녀로 머물러 있어야 했다.
경자아지매도 맨날 코를 훌쩍이며 보채던 내가 성인이 된 게 낯설어 보였는지 찬찬히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그래도 옛 모습이 좀 남아있긴 하네!”했다. 그리고 서로 “잘 지내지 아이들은?” 하고 안부를 묻고 나니 달리 더 이상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워하며 안타까이 흘려보냈던 세월과는 달리, 아득한 시간의 강은 좀체 우릴 옛날로 돌려놓지 못했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니었는데 내가 그동안 경자아지매를 얼마나 그리워했는데 하고 안타까워했지만 아무 생각도 말이 되어 나와 주지 않았다. 아이들 운동회 날 콩주머니를 보고도 경자아지매를 떠올렸고, 어쩌다 시장에 나온 자두를 보고도 걸음을 멈추었는데 그건 나 혼자만의 그리움일 뿐인 것 같았다.
무슨 말을 하면 어색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경자아지매가 옛날처럼 붉은 잇몸을 보여주며 활짝 웃을까 생각하다가 지난여름 고향집에 갔을 때 경자아지매네 집터에 가본 이야기를 했다. 뒤란의 자두나무는 많이 늙었는데 아직도 자두를 열고 있어 몇 알 따먹었고 대숲도 아직도 푸르러서 옛날과 꼭 같더라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반가웠던 것은 대나무밭 아래 샘이 아직 막히지 않고 여전히 물이 많이 나오고 샘가엔 보랏빛 현호색이 무수히 피어 있더라고 했다. 또 샘물에 가라앉은 나뭇잎 위에 개구리가 한 마리 주인처럼 들어앉아 있어 아무도 없어도 쓸쓸하지 않았다고 했더니 ‘샘’이란 단어를 듣는 순간 경자아지매는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다른 고향 기억은 많이 잊어도 그 샘만은 경자아지매도 잊지 못한 모양이었다. 내 손을 덥석 잡으며 “그 샘이 아직도 안 막혔어?”하고 반가워했다. 아마도 소독약 냄새나는 수도꼭지를 틀 때마다 경자아지매도 나처럼 달고 시원한 고향의 샘물 맛이 그리웠던가 보았다.





할머니 말씀에 의하면 우리 집 샘물은 숫물이라 맛이 못하고 경자아지매내 샘물은 암물이라 맛도 좋고 그래서 샘도 마르지 않는 거라고 하셨다. 우리 집 샘에 물이 마르면 자주 경자아지매네 물을 길어 오고 샘물을 다 퍼내고 나면 돌 틈에서 작은 모래들을 밀쳐 올리며 퐁퐁 솟구치는 물줄기가 신기해서 우린 자주 샘을 함께 치기도 했는데 그 기억도 잊지 않고 있었다. 샘물에 시장에서 사온 수박이라도 한 덩이 떠있는 날이면 우린 열두 번도 더 샘가로 가보곤 했다.
경자아지매 뿐만 아니라 언니 태숙아지매도 눈물을 글썽이며 내 이야기를 들었다. 걸핏하면 울며 집으로 간다고 토라지는 내가 재미있어 늘 영천 다리 밑에서 주워 온 아이라고 놀려댔던 이야기와, 집으로 가다 울타리 아래서 만난 떼뱀 때문에 더 큰소리로 울며 돌아왔다는 것도 기억해 주었다. 무거운 디딜방아가 내려가지 않아 동네 아기를 업고 함께 디딜방아를 찧던 일, 쥐불놀이하는 아이들 곁에서 하늘 높이 타오르던 달집을 보며 소원을 빌던 언덕, 우리 추억 속의 이야기는 그칠 줄 몰랐다. 퍼내고 또 퍼내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옛이야기는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오래 그리워했지만 잃어버리고 끝내 찾지 못할 것 같았던 마음속의 고향은 가라앉은 나뭇잎처럼 그 샘물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우리는 어느새 아무 것도 가진 건 없지만 순수하고 정이 넘쳤던 옛날 그 때로 돌아갔다. 한 우물물을 먹은 사이 라는 말의 의미가 새삼스레 내 가슴에 고운 물무늬처럼 파문 졌다.

EDITOR 편집팀
이정연 작가
이메일 : manjuyeon1@hanmail.net
2003년 4월 수필문학 등단.
2004년 중부매일신문 세정유감코너 짧은 수필 집필 (1월-4월까지)
2004년 여름호 수필 ‘망월사에서’ 에세이문학 등단
2004년 영남수필 회원 –2019년
2006년~2008년 에세이문학 올해의 수필 20선 추천
에세이문학 수필과 비평 에세이21 수필사랑 대구문협지 다수 기고
2011년 - 현재 대구 달서구 현대힐공인중개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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