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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꽃이 피듯

2023-06-14

문화 문화놀이터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꽃이 피듯
'글. 최명임'

    쌍둥이 손녀가 진통 끝에 한글을 깨쳤다. 삶의 길잡이가 되어 줄 끈 하나를 만들었다. 어느새 놀이가 되고 손이 닿는 곳마다 글자를 그려댄다. 나와 어미는 낙서 현장을 지우다가 포기하였는데 아이의 머릿속에 박혀버린 글자의 개념처럼 지워지지 않는 것도 있다.
    쌍둥이 손녀가 진통 끝에 한글을 깨쳤다. 삶의 길잡이가 되어 줄 끈 하나를 만들었다. 어느새 놀이가 되고 손이 닿는 곳마다 글자를 그려댄다. 나와 어미는 낙서 현장을 지우다가 포기하였는데 아이의 머릿속에 박혀버린 글자의 개념처럼 지워지지 않는 것도 있다.
    주로 제 이름과 ‘엄마, 아빠 사랑하요. 할머니 오레 오레 사새요.’ 그런 문장들이다. 괴발개발 그려놓고 제 딴에는 흐뭇해서 식구들을 불러 자랑한다. ‘나 이렇게 잘 자라고 있어요.’라는 고백 같아서 대견스럽다. 
    소통의 도구는 다양하지만, 아름다운 문자를 더하면 금상첨화이다. 때로는 말보다 더욱 가슴깊이 파고드는 것이 문자이니 두 녀석은 그림 같은 문자로 소통의 구역에 들어선 것이다. 구불구불 기어가는 녀석들의 그림문자를 보고 온 식구들이 함박꽃같이 웃었다.
    서로 견제하고 화합하면서 사회를 배운다. 한 녀석은 당차고 한 녀석은 부드럽고 정이 많다. 당찬 녀석은 제 일을 해내는 모습이 다부지고 정이 많은 녀석은 두루 관계에 원만하고 누구에게나 정답게 군다. 사회구성에 꼭 필요한 좋은 요소를 나누어 가졌으니 상호보완하면서 살라는 반쪽의 운명처럼 느껴진다. 필경 사회에 나가면 제 몫을 거뜬히 해낼 것이다. 문득 당파 싸움만 하다가 끝나는 정치판 인생들은 상호보완의 의미를 알까, 모를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다.





    수없이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떼던 날 박수 소리에 활개를 치며 좋아하였다. 어린이집에서 한 달을 두고 울더니 어느 참부터는 즐거워하였다.  어느 날은 난데없이 계란을 품고 앉아 병아리를 낳겠다더니 날계란 범벅이 된 옷을 들고 나왔다.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친구를 집으로 달고 오기도 하고 책을 읽기 시작하며 내 글에도 관심을 보인다. 어느 날 제가 쓴 동시를 읽어주며 나와 문학적 소통을 시도한다. 그렇게 한 걸음씩 제 길을 나아가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내가 그들에게 세상사는 법을 가르치는 것 같지만, 8살짜리 스승 앞에서 내가 겸손해질 때가 있다. 
    큰 녀석에게 말실수하고 속으로 ‘아뿔사!’ 했다. 녀석이 생각을 한참 하는가 싶더니 한마디 건네었다. 이제부터 우리 가족이 나쁜 말을 하면 벌점을 주는 규칙을 정하면 좋겠다고 한다. 정중하게 사과하고 벌겋게 단 얼굴로 삼사일언을 곱씹었다. 
    인화가 피는 과정을 행복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어느 과정에서는 숨이 차 주저앉기도 하고 그 몸 위로 바람이 불지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그렇게 핀 꽃이라야 향기가 깊고 더 아름답다 하지 않았는가.
    겨우내 실내에 끼고 있던 선인장을 봄볕이 좋아 내놓았더니 화상을 입고 말았다. 봄 햇살이 독이 될 줄 미처 몰랐다. 몇 년이 가도 그 흉터가 남아있어 볼 때마다 짠한데 나는 식물 앞에서 인생 공부를 한다.
    저 출산으로 아이가 귀하다. 세상에 없는 귀한 자식이다. 부모는 인생 지도를 꿰고 있으니 생각대로 이끌고 싶은 마음 간절할 것이다. 그렇다고 완벽한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니다. 품엣 자식으로 끼고 자신의 셈법으로 인생을 가르치다가 덜컥 사회에 나서면 어른모습을 한 아이가 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무분별한 사랑은 자식을 사회에서 겉돌게 하는 독소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하리라. 
    두 녀석이 입학하였다. 첫울음을 울 때부터 돌보기를 7년째 할마의 가슴이 얼마나 벅차고 감동적인지 그 녀석들은 모를 거다. 이틀 새 애먼 살을 먹어 유예신청을 할까 하고 식구들이 갈등에 빠졌었다. 보수파인 양가 어른들은 단점을, 진보파인 아비 어미는 장점을 내세웠다. 불안한 정국을 놓고 첨예한 대립을 하던 당파싸움은 아니었지만, 어미는 입학 직전까지 갈등에 빠졌다. 결국, 진보의 장점을 따르고 보수파가 걱정하는 점은 노력하기로 타협을 보았다. 믿는 대로 될 것이다. 
    사랑스런 두 녀석이 꽃이 피듯 그렇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모체에서 여물어진 꽃씨가 땅에 떨어지는 일은 두려움이다. 새들의 부리를 조심해야 하고 지기를 받으며 적당히 물기를 조절하고 조곤조곤 숙성되어야 한다. 여타조건이 충족되면 땅을 헤집고 나오기 위해서 무엇보다 100퍼센트의 의지를 내어야 한다. 굳은 의지는 넘어진다 해도 다시 일어설 힘이 되기 때문이다. 애써 싹을 틔워도 태풍의 계절엔 세찬 비바람이 일고 걸림돌은 곳곳에 놓여 시험에 들게 할 것이다.
    ‘사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우랴!’ 절치부심으로 핀 꽃을 바라보면서 두 아이가 그렇게 제 꽃을 피워 나가길 간절히 소망한다.  
    쌍둥이 손녀가 진통 끝에 한글을 깨쳤다. 삶의 길잡이가 되어 줄 끈 하나를 만들었다. 어느새 놀이가 되고 손이 닿는 곳마다 글자를 그려댄다. 나와 어미는 낙서 현장을 지우다가 포기하였는데 아이의 머릿속에 박혀버린 글자의 개념처럼 지워지지 않는 것도 있다.
    주로 제 이름과 ‘엄마, 아빠 사랑하요. 할머니 오레 오레 사새요.’ 그런 문장들이다. 괴발개발 그려놓고 제 딴에는 흐뭇해서 식구들을 불러 자랑한다. ‘나 이렇게 잘 자라고 있어요.’라는 고백 같아서 대견스럽다. 
    소통의 도구는 다양하지만, 아름다운 문자를 더하면 금상첨화이다. 때로는 말보다 더욱 가슴깊이 파고드는 것이 문자이니 두 녀석은 그림 같은 문자로 소통의 구역에 들어선 것이다. 구불구불 기어가는 녀석들의 그림문자를 보고 온 식구들이 함박꽃같이 웃었다.
    서로 견제하고 화합하면서 사회를 배운다. 한 녀석은 당차고 한 녀석은 부드럽고 정이 많다. 당찬 녀석은 제 일을 해내는 모습이 다부지고 정이 많은 녀석은 두루 관계에 원만하고 누구에게나 정답게 군다. 사회구성에 꼭 필요한 좋은 요소를 나누어 가졌으니 상호보완하면서 살라는 반쪽의 운명처럼 느껴진다. 필경 사회에 나가면 제 몫을 거뜬히 해낼 것이다. 문득 당파 싸움만 하다가 끝나는 정치판 인생들은 상호보완의 의미를 알까, 모를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다.
    수없이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떼던 날 박수 소리에 활개를 치며 좋아하였다. 어린이집에서 한 달을 두고 울더니 어느 참부터는 즐거워하였다.  어느 날은 난데없이 계란을 품고 앉아 병아리를 낳겠다더니 날계란 범벅이 된 옷을 들고 나왔다.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친구를 집으로 달고 오기도 하고 책을 읽기 시작하며 내 글에도 관심을 보인다. 어느 날 제가 쓴 동시를 읽어주며 나와 문학적 소통을 시도한다. 그렇게 한 걸음씩 제 길을 나아가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내가 그들에게 세상사는 법을 가르치는 것 같지만, 8살짜리 스승 앞에서 내가 겸손해질 때가 있다. 
    큰 녀석에게 말실수하고 속으로 ‘아뿔사!’ 했다. 녀석이 생각을 한참 하는가 싶더니 한마디 건네었다. 이제부터 우리 가족이 나쁜 말을 하면 벌점을 주는 규칙을 정하면 좋겠다고 한다. 정중하게 사과하고 벌겋게 단 얼굴로 삼사일언을 곱씹었다. 
    인화가 피는 과정을 행복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어느 과정에서는 숨이 차 주저앉기도 하고 그 몸 위로 바람이 불지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그렇게 핀 꽃이라야 향기가 깊고 더 아름답다 하지 않았는가.
    겨우내 실내에 끼고 있던 선인장을 봄볕이 좋아 내놓았더니 화상을 입고 말았다. 봄 햇살이 독이 될 줄 미처 몰랐다. 몇 년이 가도 그 흉터가 남아있어 볼 때마다 짠한데 나는 식물 앞에서 인생 공부를 한다.
    저 출산으로 아이가 귀하다. 세상에 없는 귀한 자식이다. 부모는 인생 지도를 꿰고 있으니 생각대로 이끌고 싶은 마음 간절할 것이다. 그렇다고 완벽한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니다. 품엣 자식으로 끼고 자신의 셈법으로 인생을 가르치다가 덜컥 사회에 나서면 어른모습을 한 아이가 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무분별한 사랑은 자식을 사회에서 겉돌게 하는 독소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하리라. 





    두 녀석이 입학하였다. 첫울음을 울 때부터 돌보기를 7년째 할마의 가슴이 얼마나 벅차고 감동적인지 그 녀석들은 모를 거다. 이틀 새 애먼 살을 먹어 유예신청을 할까 하고 식구들이 갈등에 빠졌었다. 보수파인 양가 어른들은 단점을, 진보파인 아비 어미는 장점을 내세웠다. 불안한 정국을 놓고 첨예한 대립을 하던 당파싸움은 아니었지만, 어미는 입학 직전까지 갈등에 빠졌다. 결국, 진보의 장점을 따르고 보수파가 걱정하는 점은 노력하기로 타협을 보았다. 믿는 대로 될 것이다. 
    사랑스런 두 녀석이 꽃이 피듯 그렇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모체에서 여물어진 꽃씨가 땅에 떨어지는 일은 두려움이다. 새들의 부리를 조심해야 하고 지기를 받으며 적당히 물기를 조절하고 조곤조곤 숙성되어야 한다. 여타조건이 충족되면 땅을 헤집고 나오기 위해서 무엇보다 100퍼센트의 의지를 내어야 한다. 굳은 의지는 넘어진다 해도 다시 일어설 힘이 되기 때문이다. 애써 싹을 틔워도 태풍의 계절엔 세찬 비바람이 일고 걸림돌은 곳곳에 놓여 시험에 들게 할 것이다.
    ‘사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우랴!’ 절치부심으로 핀 꽃을 바라보면서 두 아이가 그렇게 제 꽃을 피워 나가길 간절히 소망한다.  
    주로 제 이름과 ‘엄마, 아빠 사랑하요. 할머니 오레 오레 사새요.’ 그런 문장들이다. 괴발개발 그려놓고 제 딴에는 흐뭇해서 식구들을 불러 자랑한다. ‘나 이렇게 잘 자라고 있어요.’라는 고백 같아서 대견스럽다. 
    소통의 도구는 다양하지만, 아름다운 문자를 더하면 금상첨화이다. 때로는 말보다 더욱 가슴깊이 파고드는 것이 문자이니 두 녀석은 그림 같은 문자로 소통의 구역에 들어선 것이다. 구불구불 기어가는 녀석들의 그림문자를 보고 온 식구들이 함박꽃같이 웃었다.
    서로 견제하고 화합하면서 사회를 배운다. 한 녀석은 당차고 한 녀석은 부드럽고 정이 많다. 당찬 녀석은 제 일을 해내는 모습이 다부지고 정이 많은 녀석은 두루 관계에 원만하고 누구에게나 정답게 군다. 사회구성에 꼭 필요한 좋은 요소를 나누어 가졌으니 상호보완하면서 살라는 반쪽의 운명처럼 느껴진다. 필경 사회에 나가면 제 몫을 거뜬히 해낼 것이다. 문득 당파 싸움만 하다가 끝나는 정치판 인생들은 상호보완의 의미를 알까, 모를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다.
    수없이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떼던 날 박수 소리에 활개를 치며 좋아하였다. 어린이집에서 한 달을 두고 울더니 어느 참부터는 즐거워하였다.  어느 날은 난데없이 계란을 품고 앉아 병아리를 낳겠다더니 날계란 범벅이 된 옷을 들고 나왔다.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친구를 집으로 달고 오기도 하고 책을 읽기 시작하며 내 글에도 관심을 보인다. 어느 날 제가 쓴 동시를 읽어주며 나와 문학적 소통을 시도한다. 그렇게 한 걸음씩 제 길을 나아가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내가 그들에게 세상사는 법을 가르치는 것 같지만, 8살짜리 스승 앞에서 내가 겸손해질 때가 있다. 
    큰 녀석에게 말실수하고 속으로 ‘아뿔사!’ 했다. 녀석이 생각을 한참 하는가 싶더니 한마디 건네었다. 이제부터 우리 가족이 나쁜 말을 하면 벌점을 주는 규칙을 정하면 좋겠다고 한다. 정중하게 사과하고 벌겋게 단 얼굴로 삼사일언을 곱씹었다. 
    인화가 피는 과정을 행복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어느 과정에서는 숨이 차 주저앉기도 하고 그 몸 위로 바람이 불지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그렇게 핀 꽃이라야 향기가 깊고 더 아름답다 하지 않았는가.
    겨우내 실내에 끼고 있던 선인장을 봄볕이 좋아 내놓았더니 화상을 입고 말았다. 봄 햇살이 독이 될 줄 미처 몰랐다. 몇 년이 가도 그 흉터가 남아있어 볼 때마다 짠한데 나는 식물 앞에서 인생 공부를 한다.
    저 출산으로 아이가 귀하다. 세상에 없는 귀한 자식이다. 부모는 인생 지도를 꿰고 있으니 생각대로 이끌고 싶은 마음 간절할 것이다. 그렇다고 완벽한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니다. 품엣 자식으로 끼고 자신의 셈법으로 인생을 가르치다가 덜컥 사회에 나서면 어른모습을 한 아이가 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무분별한 사랑은 자식을 사회에서 겉돌게 하는 독소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하리라. 
    두 녀석이 입학하였다. 첫울음을 울 때부터 돌보기를 7년째 할마의 가슴이 얼마나 벅차고 감동적인지 그 녀석들은 모를 거다. 이틀 새 애먼 살을 먹어 유예신청을 할까 하고 식구들이 갈등에 빠졌었다. 보수파인 양가 어른들은 단점을, 진보파인 아비 어미는 장점을 내세웠다. 불안한 정국을 놓고 첨예한 대립을 하던 당파싸움은 아니었지만, 어미는 입학 직전까지 갈등에 빠졌다. 결국, 진보의 장점을 따르고 보수파가 걱정하는 점은 노력하기로 타협을 보았다. 믿는 대로 될 것이다. 
    사랑스런 두 녀석이 꽃이 피듯 그렇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모체에서 여물어진 꽃씨가 땅에 떨어지는 일은 두려움이다. 새들의 부리를 조심해야 하고 지기를 받으며 적당히 물기를 조절하고 조곤조곤 숙성되어야 한다. 여타조건이 충족되면 땅을 헤집고 나오기 위해서 무엇보다 100퍼센트의 의지를 내어야 한다. 굳은 의지는 넘어진다 해도 다시 일어설 힘이 되기 때문이다. 애써 싹을 틔워도 태풍의 계절엔 세찬 비바람이 일고 걸림돌은 곳곳에 놓여 시험에 들게 할 것이다.
    ‘사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우랴!’ 절치부심으로 핀 꽃을 바라보면서 두 아이가 그렇게 제 꽃을 피워 나가길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