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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강 따라 흐르는 나무와 숲의 이야기

2021-11-30

라이프가이드 여행


테마기행
남한강 따라 흐르는 나무와 숲의 이야기
'충북의 숲과 나무?충주Ⅱ'

    충북 충주시를 흐르는 남한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오래된 나무와 숲의 옛 이야기를 듣는다. 용의 전설이 전해지는 중앙탑면 장천리 목계솔밭 이야기, 강을 바라보며 서있는 350년 정도 된 창동리 회화나무와 고려시대 부처상, 가야 사람 악성 우륵과 조선시대 임진왜란 전투의 역사가 전해지는 탄금대를 한 바퀴 도는 길은 산책하기 좋은 숲길이기도 하다.  


용의 쉼터, 목계 솔밭
    목계나루와 목계솔밭은 남한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다. 강 동쪽의 목계나루는 충북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 목계솔밭은 충북 충주시 중앙탑면 장천리에 있다. 
    목계솔밭에는 이 두 마을에 얽힌 이야기가 전한다. 충주시 자료에 따르면 조선시대 헌종 임금 때 이곳에 가뭄이 오래 지속되고 있었는데, 목계 마을의 지도자와 강 건너편 저우내 마을 지도자가 같은 날 같은 꿈을 꾸었다. 두 사람의 꿈에 신령이 나타나 저우내에 소나무를 심어 용이 머물게 하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렇게 꾸며진 목계 솔밭은 지금도 남아 있다. 솔밭에 있는 수십 그루의 소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됐다. 



    목계 솔밭에 내려오는 용의 이야기는 목계 별신제와도 얽혀있다. 목계 별신제의 한 과정에 목계 줄다리기가 있는데, 줄다리기에 사용하는 암줄과 숫줄이 용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충주시 자료에 따르면 1977년 충주시 우륵문화제 행사의 하나로 목계 마을 강변에서 목계 별신제를 지내며 목계 줄다리기를 재현했다. 당시 줄의 길이가 암줄과 숫줄 각각 150m, 줄의 굵기는 지름 150㎝였다. 줄을 만드는데 쓰인 볏짚이 트럭 14대 분량이었다. 
    목계나루터를 알리는 커다란 비석 앞에서 구룡로로 접어들어 조금 가다보면 길 왼쪽에 목계 별신제와 목계줄다리기 유래비가 있다. 
    목계줄다리기 유래비를 뒤로하고 옛 나루터와 강 건너 목계 솔밭이 훤히 보이는 뚝방 위에 섰다. 물결마다 햇볕이 부서져 반짝인다. 푸른 강물에 깃들어 산다는 전설 속 용의 비늘 같다. 강 건너편 목계솔밭 소나무 숲이 기상 높게 푸르다.  
강가의 회화나무 고목 한 그루와 바위 절벽에 새겨진 부처상
    목계솔밭에서 강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강가에 우뚝 선 회화나무 고목 한 그루와 절벽에 새겨진 부처상을 만나게 된다. 
    충북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 243-2, 남한강가에 회회나무 한 그루가 350년 동안 오롯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굵은 줄기 비틀며 가지를 넓게 퍼뜨린 나무는 목계솔밭 전설 속 용의 기상과 견줄 만큼 기세가 등등하다. 
    강바람에 실린 물비린내와 늦가을 마른 햇볕의 냄새가 회화나무 고목을 지난다. 그 바람은 고목 앞을 지키는 두 개의 석물을 감싸고 지난다. 하나는 충주 창동리 약사여래입상이고 다른 하나는 충주 창동리 오층석탑이다. 약사여래입상은 인근 폐광에서 발견됐고, 오층석탑은 고려 전기의 탑으로 인근 절터에 있었다고 한다. 석물 두 개와 회화나무 고목이 있는 곳에서 남쪽으로 약 160m 정도 되는 거리에 충주 창동리 마애 여래 입상이 있다.       
    충북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 240, 충주 창동리 마애 여래 입상은 강물에 뿌리를 둔 바위 절벽에 새겨졌다. 강가로 내려가는 가파른 계단을 다 내려서면 절벽에 새겨진 마애 여래 입상이 보인다. 고려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하는 마애 여래 입상은 강물이 흘러오는 남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강에 배를 띄우고 배에서 바라봐야 마애 여래 입상의 진면목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남한강 강가 수직 절벽에 새겨진 4m 높이의 마애 여래 입상, 용의 기상처럼 당당하게 350년 세월을 지키고 있는 회화나무 한 그루, 이 둘은 예로부터 남한강을 오가는 뱃사람들, 강에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단한 마음을 어루만져주었을 것이다.  
 
창동리 5층석탑과 약사여래입상  그리고 회화나무 고목
 
탄금대 숲을 거닐다
    또 강을 거슬러 오른다. 창동리 마애 여래 입상에서 직선거리 약 1.6㎞ 정도 되는 곳에 탄금대가 있다. 남한강과 달천이 만나는 곳, 해발 100m를 갓 넘긴 낮은 산에 위치한 탄금대는 가야 사람 우륵과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신립 장군과 8천명의 군사가 목숨을 바친 전투의 역사가 전해진다. 
    탄금대라는 이름은 악성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한데서 유래했다. 신라 진흥왕이 가야 지역을 신라로 복속시킬 때 가야 사람 우륵도 신라 사람이 됐다. 진흥왕은 가야의 귀족과 명문가 사람들을 충주로 이주토록 했다. 그중에 우륵도 있었다.  
    탄금대 야외음악당이 있는 너른 풀밭을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돌아 걷는다. 상수리나무, 소나무, 단풍나무가 만든 숲길을 지난다. 하늘이 열리는 곳에 임진왜란 때 이곳에서 전사한 8천명의 영령을 기리기 위해 세운 팔천고혼위령탑이 높이 솟았다. 병풍 같은 소나무 숲 앞에 일제강점기 항일 운동에 나섰던 권태응 시인의 시비가 있다. 시비에 그의 시 <감자꽃>이 새겨졌다. 
 
(左) 탄금대 숲길   (右) 탄금정과 소나무 숲

    탄금정으로 가는 길은 소나무 숲길이다. 구불거리며 자란 소나무들 숲을 이루어 만들어 내는 부정형의 풍경 사이로 길이 이어진다. 탄금정에서 열두대로 내려간다.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이 뜨거워진 활시위를 식히기 위해 강물까지 열두 번 오르내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열두대에서 바라보는 남한강 풍경이 압권이다. 
    사람들은 보통 열두대에서 발길을 돌린다. 하지만 탄금대의 숲길은 계속 이어진다. 탄금정을 지나 조금 더 가면 내리막 계단이다. 충정공신립장군순절비, 대흥사, 국궁장을 지나 숲으로 들어가는 오솔길을 따른다. 숲이 우거진 산책로다. 그 길을 따라가면 출발했던 곳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