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청주 문화도시조성사업 [다음세대 기록활동]
청주를 수호해 온 우암산의 문화유산 2부
'다시 찾은 보물 - 청주의 문화유산'

‘다시찾은보물’은 2023 청주 문화도시조성사업 [다음세대 기록활동]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된 시리즈로 청주의 문화자원을 6개 테마로 구분하여 글, 그림, 사진으로 엮은 책입니다. 문화유산, 역사인물, 숲길산길, 예술인, 교육유산, 미래유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 편에서는 ‘1권: 문화유산’을 게재합니다.
Cheapter4-2. 청주를 수호해 온 우암산의 문화유산
우암산성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산성이 고을 치소의 동쪽 2리에 있다. 흙으로 쌓았으며 둘레는 5,022척이다. 우물이 4개 있으며 이미 폐성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산성이라고만 기록하여 산성의 고유 명칭은 미상이다. 1860년대에 김정호가 편찬한 『대동지지』에는 ‘고성(古城)이 동쪽 2리 당이산(唐?山)에 있다’고 하였다. 일제강점기에 비밀문서로 간행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는 사주면(四州面) 교서리(校西里)에 있는 것으로 지명이 자세하지 않고 청주읍의 동방 약 반리인 와우산정에 있는 토축 산성으로 둘레 약 1,500간(間), 높이가 평균 5척, 기부 폭 2∼4간으로 제법 완존하고 있다고 기록하였다.
지금도 성벽이 남아 있는 산등성이를 따라 등산을 하면서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곳곳에 성벽의 흔적을 볼 수 있고, 또한 수없이 흩어져 있는 토기, 기와조각들을 통하여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청주를 지키기 위해 우암산에 성을 쌓아 고을을 다스리고 삶을 영위하였던 옛 사람들의 자취를 느낄 수 있다. 앞으로 우암산에 대한 종합적인 학술조사와 개발이 이루어진다면 그 첫 과제가 우암산성의 조사와 연구 그리고 산성의 부분적인 복원이 될 것이다.
우암산성과 함께 중요한 유적이 충북도청 동쪽에 위치하는 당산의 토성이다. 크게 보면 우암산성과 하나의 산성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시대적 또는 성격적으로는 우암산성과 구별되기도 한다. 당산토성은 대성동과 문화동에 걸쳐 있는 해발 104.3m의 작은 산 정상부에 있는 테뫼식 산성이다. 이 산에 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당이산(唐?山)’이라 칭하고 주치(州治)의 동쪽 1리에 있는 청주의 진산이며, 토성 터가 있다고 기록한 이래로 계속 동일한 기록이 보이고 있다. 당이산은 ‘당산(唐山)’이나 ‘당산(堂山)’이라고 표기되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신앙의 대상이 되었음을 시사하고 있어 주목된다. 그리고 이곳은 모충사의 옛터이며,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의 신사가 자리하기도 하였다.

당산과 충북도청 모습



당산은 비록 낮은 구릉지에 불과한 작은 동산이지만 청주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위치이다. 당산에서 우암산으로 연결되는 동쪽 능선을 제외하면 삼면이 가파른 암반부토여서 험준한 지형을 이루었다. 심하게 파괴되긴 하였으나 정상부에는 건물이 있었던 대지가 있고, 정상부에 돌려 쌓은 토루의 흔적이 비교적 뚜렷하며, 현재 1m 높이로 남아 있어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남서쪽과 동쪽으로는 비교적 완만하고 우암산성의 외성과도 연계되어 있는데 평탄한 대지가 조성된 곳에 낮은 토루가 2중으로 단을 이룬 곳이 있다.
1980년에 지표조사를 하면서 동·남쪽 성벽 일부를 시굴한 결과 벽면은 두께 20㎝ 내외로 판축(版築)하였고, 그 내부에 적심이 존재하는 곳이 있고, 초석이 있는 주변의 토층을 조사한 결과 표토에서 1m까지는 혼합토층이고, 그 아래 20㎝는 토사층이며, 1.2m 이하로는 적심석이나 탄화된 목편이 많아 생활흔적으로 보였으며, 무문토기편이 수습되기도 하였다. 남쪽과 북쪽에 작은 통행로가 있고, 동으로 우암산성의 외성 능선으로 연결되는 곳도 통행로가 있다. 전체의 둘레는 550m쯤으로 당초에는 독립된 작은 산성으로서의 기능을 하였을 것이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우암산성의 내·외성과 연결되면서는 나성의 일부로 존속되었던 듯하다. 우암산에 축조된 산성과 연결해 보면 대략 4㎞에 이르는 큰 성이다. 상당산성에 비해 200m 정도 작다.
지금은 당산공원이라 불리는 작은 공원지역으로 정상부를 평평하게 정지하고 운동기구를 갖추어 놓았는데, 이곳이 청주의 초기역사를 간직한 중요한 유적지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발굴조사와 같은 학술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지금이라도 더 이상 훼손되지 않게 잘 보존하고 발굴조사를 통해 사적지로 가꾸어야할 청주의 귀중한 문화재임을 인식하고 작은 안내판이라도 하나 세워 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암산에는 지금도 수많은 사찰들이 자리하고 있지만, 이미 통일신라 때부터 불교문화가 들어와 꽃피었다. 우암산 골짜기로 이어지는 작은 오솔길을 따라 곳곳을 답사하다 보면 적당히 평지를 이룬 건물터에서 기와편들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곳들은 대부분 절터라고 보면 틀림없다. 아직까지 우암산에 대한 학술적인 조사연구가 미진하고, 특히 불교유적에 대해서는 지표상에 남아 있는 유물들을 통해 몇 군데의 절터가 확인되었을 뿐이어서 자세한 불교문화의 실체를 이야기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현존하는 유적과 유물들을 통하여 확인된 불교유적은 대략 20여 곳에 이른다.
청주시 상당구 수동 산33번지에 있는 목우사지(牧牛寺址)는 상당공원에서 우암산 남쪽 계곡을 따라 오르다보면 초입의 오른편에 위치한다. 도로 오른편에 오래된 축대가 보이는데 이것이 목우사지의 대지를 이루었던 석축이다. 길이 약 50m, 높이 3∼8m의 석축 위에는 평지를 이룬 1천 평 정도의 밭과 민가가 있는 곳이 조선후기의 각종 지리지에 빠짐없이 나타나는 목우사(牧牛寺)의 옛터이다. 우암산의 많은 절터들 가운데 유일하게 문헌기록을 갖고 있는 곳이다. 지금은 주변이 모두 밭으로 변하고 주택이 들어서 있어 절터의 유구는 남아 있지 않고 주변에서 기와편 등의 유물이 발견될 뿐이다. <3부에서 계속>

EDITOR 편집팀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전화 : 043-219-1006
주소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상당로 314 청주첨단문화산업단지 2층
홈페이지 : www.cjculture42.org
청주문화도시조성사업
본 칼럼니스트의 최근 글 더보기
해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