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청주 문화도시조성사업 [다음세대 기록활동]
청주를 수호해 온 우암산의 문화유산 1부
'다시 찾은 보물 - 청주의 문화유산'

‘다시찾은보물’은 2023 청주 문화도시조성사업 [다음세대 기록활동]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된 시리즈로 청주의 문화자원을 6개 테마로 구분하여 글, 그림, 사진으로 엮은 책입니다. 문화유산, 역사인물, 숲길산길, 예술인, 교육유산, 미래유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 편에서는 ‘1권: 문화유산’을 게재합니다.
Cheapter4-1. 청주를 수호해 온 우암산의 문화유산
청주 우암산과 무심천은 오늘의 청주가 있게 한 자연의 배경이다.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은 무심천을 따라 청주에 와서 살기 시작하였으며 무심천을 젖줄로 삼고 우암산을 든든한 울타리로 삼아 역사와 문화를 이루었다. 우암산(해발 338m)은 청주의 진산(鎭山)으로 본래 와우산(臥牛山)이라 불렀다. 우리의 고유한 지명들이 일제강점기에 통폐합 또는 변경되면서 와우산이 우암산으로 바뀌었다.
와우산은 『여지도서』 등의 조선시대 지리지와 『청주연혁지』·『조선환여승람』 등 일제강점초기의 문헌기록에 나타나며 “우산(牛山)”이라 약칭되기도 하였다. 와우산이라는 지명은 산의 형상이 소(牛)가 누워 있는 모양에서 유래되었다는 속설이 일반적으로 구전되고 있는데, 소를 불교와 관련하여 이야기하기도 한다. 나는 솟은 산이라는 의미의 ‘솟’이 소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전국에 수없이 많은 소이산도 마찬가지이다. 어쨌든 와우산은 어느덧 기록에만 남고 요즘은 누구나 우암산으로 부른다. 다른 명칭으로는 당이산(唐?山), 장암산(壯岩山), 대모산(大母山), 무암산(毋岩山) 등이 기록에 보이고 이밖에 목암산(牧岩山), 목은산(牧隱山) 등으로도 전해진다. 우암산이라 불리기 시작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와우산의 서쪽에 있는 우암동이 본래 청주군 북주내면(北州內面) 외덕리(外德里)였다가 1935년에 청주읍에 편입되면서 와우산과 용암사(龍岩寺)의 이름을 따서 우암동으로 개칭되었으므로 대략 이때부터 우암산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용암사가 1945년에 창건되었으므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우암동 지명이 어떻게 붙여진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동네 이름이 뒷산에 옮겨 붙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우암산의 전경



우암산은 한남금북정맥에서 갈라져 나온 지맥으로 가까이는 상령산(上嶺山) 즉 상당산성의 남서쪽으로 뻗은 줄기인데 바람매기 고개를 사이에 두고 거의 독립된 산처럼 보인다. 따라서 청주의 외곽에서 시내 쪽을 바라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우암산이고, 우암산에 오르면 청주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여 과연 청주의 진산임을 느낄 수 있다.
삼국시대에 백제에 속하였던 청주는 상당현(上黨縣)이라는 지명으로 문헌기록에 처음 나타나는데 우암산은 백제 때는 상당현의 치소, 또는 통일신라시대 서원소경(西原小京)의 서원경성(西原京城)으로 비정되기도 하는데 아직 확실한 증거는 없다. 또 우암산 주변지역에서는 선사시대의 유적과 유물이 발견되었고, 산 정상부와 능선을 감싸고 축조된 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여러 계곡에는 현존 사찰이 있거나 옛 절터가 발견된다. 이밖에 우암산에는 조선시대의 청주향교가 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사람들에 의하여 그들의 신사가 이 산에 세워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우암산 기슭 곳곳에서는 민속신앙 행위가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전승되어 오고 있다. 이와 같이 우암산은 청주의 옛 역사는 물론 문화의 변천사를 밝힐 수 있는 문화유적의 보고라 할 수 있다.
우암산에는 둘레가 4㎞에 이르는 산성이 축조되어 있다. 산에 자주 오르는 등산객뿐만 아니라 산에 의지해 사는 사람들조차 우암산성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근래에 성벽 보호를 위한 안내 표지판이 몇 개 설치되어 우암산에도 상당산성과 같은 산성이 있었음을 일반인도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암산성의 정확한 실체와 성격에 대해서는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고, 일반인들은 어디까지가 성벽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산성이라면 눈에 뚜렷하게 보이는 성벽이나 성문 등의 시설이 있어야 하는데 우암산 어디에도 눈에 띄는 유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자세히 살펴보면 우암산에 오르는 산등성이에서 성벽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으며, 수없이 흩어져 나뒹굴고 있는 기와조각들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우암산성의 실체이며 잃어버린 역사의 흔적이다.
우암산성은 해발 338m의 우암산 정상에서 동·서쪽 능선을 따라 성벽을 축조하고 중심부의 큰 계곡을 포위한 포곡식 산성이다. 동고서저 북고남저의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성을 쌓고 주입부에서는 동서로 약 150m 길이로 쌓은 토성을 이루게 하여 전체적으로 누에 모양을 이루고 있다. 우암산 쪽의 내성과 당산을 둘러싼 외성, 그리고 두 성을 연결한 나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청주 시내를 향하여 낮은 계곡을 이룬 나성의 서쪽 성벽은 주택의 밀집으로 완전히 유실되었다. 당산을 제외한 우암산만의 산성 둘레는 약 3㎞에 이르는데 성벽은 석심을 박고 내탁하여 축조하였다. 삼일공원에서 산 정상에 오르는 등산로와 동쪽 용담동에서 오르는 등산로에 남아 있는 성벽이 비교적 잘 남아 있으며 외측의 높이가 약 15m에 이른다. 그리고 각루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은 시내 쪽인 서벽에 3곳, 동벽에 8곳이 확인되어 산성의 방어기능이 주로 동쪽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성문은 남쪽 계곡의 목우사지 방면에서 성안의 민가로 들어가는 계곡에 주문인 남문지가 있고 서벽과 북벽에 3∼4개소의 작은 문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수구 역시 성안에서 가장 낮은 계곡을 이루는 남문지 쪽에 있었을 것이 분명하나 유구는 남아있지 않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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