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청주 문화도시조성사업 [도시이야기 여행]
왕비의 꿈에 나타난 구루물 돌부처-2부
'숨겨진 운천동 이야기- 구루물 산책'

‘구루물 산책’은 2023 청주 문화도시조성사업 [도시이야기여행]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된 단행본입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운천동의 숨겨진 다채로운 발굴 이야기를 흥덕사지를 발굴한 지역 전문가를 통해 시민들에게 알리고자 엮은 책입니다.
Cheapter6. 왕비의 꿈에 나타난 구루물 돌부처
용화보전은 내부가 통해 있는 2층 형태로 설계돼 높이가 최고 5.5m에 이르는 장육불 등 대형 불상들을 봉안할 수 있게 하였다. 석조불상군 뒤로는 1000구의 작은 불상을 봉안할 수 있도록 천불감을 설치하였다. 용화사는 이밖에도 1987년에 무심천 제방에 연하여 범종루를 조성하였으며, 용화보전 앞에는 1996년에 세운 팔각오층석탑이 있고, 용화보전의 동쪽 귀퉁이에는 고려시대 석탑부재가 남아있다.

용화사 석조불상군



석조불상들은 규모와 조성 수법들이 각기 다른데 여래입상 4구, 여래좌상 1구, 보살좌상 1구, 유마상(維摩像)으로 보이는 불상 1구 등 모두 7불이다. 그런데 용화보전 좌측 불상의 뒷면에 나한상이 새겨져 있어서 모두 8구로 보기도 한다. 이 석불들은 조성 양식으로 볼 때 본래부터 함께 조성되어 동일 법당에 봉안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사찰측에서는 용화보전에 봉안한 3구의 불상 중 중앙에 주불로 모신 불상에 미륵부처님, 좌측 불상에 아미타여래부처님, 우측 불상에 약사여래부처님이라고 쓴 명패를 세워 놓았으며, 극락전에 봉안된 4구의 불상은 좌측으로부터 미륵보살님, 보현보살님, 미상, 유마거사라 쓴 명패를 좌대에 놓아 설명하고 있다. 이 석불상군은 1976년에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되었다가 중요성이 인정되어 1989년 4월 10일에 보물 제985호로 승격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 지정되었다.
이들 중 용화보전에 봉안된 3구의 여래입상이 가장 주목된다. 먼저 가운데서 주존불의 역할을 하고 있는 여래입상은 높이가 5.5m로 가장 크고 얼굴 부분도 크게 조각되어 장대해 보인다. 머리에 나발(螺髮)이 있어서 여래상으로 보이나 육계(肉?)가 마치 보살의 보발처럼 높게 꾸며져 있다. 상호(相好)는 근엄하고 특히 둥근 턱 선과 목에 삼도(三道)를 표현하여 불신의 풍만함을 보인다. 대의는 통견(通肩)으로 앞자락을 배 부분까지 둥글게 드러내어 가슴에 ‘만(卍)’자와 속에 입은 내의, 그리고 띠매듭이 보인다. 대의 자락은 배 밑으로 둥글게 늘어지고 끝자락을 왼쪽 어깨에 걸쳐 넘기고 있는데 팔뚝 부분에 동심원의 옷주름을 표현한 것이 특이하다. 내의의 가장자리에는 반원형의 무늬를 장식하고 묶은 띠로 인한 주름도 표현하는 등 부분적으로 섬세함이 보인다. 손은 크고 양감 있게 조각되었는데 시무외(施無畏) 여원인(與願印)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둘째손가락만 길게 뻗고 있다. 허리 아래로는 대의 자락이 길게 늘어져 다리의 윤곽은 보이지 않고 밑으로 양쪽 발만 내밀어져 있다. 전체적으로 거불(巨佛)로서 투박한 조형감을 보이기는 하지만 균형감과 세부적인 섬세함이 표현된 불상이다.
본존불의 왼쪽에 서있는 여래입상은 크기 면에서는 앞의 본존상과 높이가 거의 같은 거대한 불상이다. 그러나 머리 부분이 작아서 조금 작은 상처럼 보인다. 얼굴이 작고 둥글며 온화한 인상이고, 머리는 나발이고 육계도 작다. 대의는 통견이나 앞의 상과 달리 대의자락을 목 주위로 감아 입어 가슴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따라서 몸 전체에 옷주름이 덮여 있는데 양팔과 허리, 양다리의 둥근 양감을 드러내며 밀착되게 물결처럼 흘러내리는 옷주름 표현은 통일신라시대 여래입상의 영향을 보여준다. 그러나 가슴의 옷주름을 마치 꽃잎처럼 표현하고 있는 점은 토착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상의 뒷면에는 조금 작은 크기로 승려상이 부조되어 있어서 매우 특이한데, 나한상으로 보이며 수행자의 얼굴 표정이 뚜렷하고 왼손에 작은 향로를 받쳐 들고 있다.

여래입상 뒷면에 새겨진 승려상



다음 본존 오른쪽의 여래입상은 두 상에 비해서 훨씬 작은 상으로 현재는 높은 대좌로 높이를 맞추어 봉안되어 있다. 대의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편단우견(偏袒右肩)으로 입고 오른쪽 어깨 부분에는 편삼(偏衫)을 걸친 듯하며, 따라서 옷주름은 외쪽 어깨 쪽으로 치켜 올려졌다. 여래상이면서 양손에 병과 보주 같은 지물을 들고 있는 점이 특이하며, 앞의 두 상에 비해 조형성이 떨어진다.
극락전에 봉안된 상들은 크기가 훨씬 작고 조각 표현이 매우 거친 상들이다. 먼저 맨 좌측에 미륵보살님이라 명패가 붙은 여래입상은 나발이 굵게 표현되고 통견의 법의를 입고 있다. 손이나 옷주름의 표현도 투박하고 불분명하다. 두 번째로 보현보살님이라는 명패가 붙은 여래좌상은 얼굴의 표정도 어둡고, 대의는 양 어깨에 걸쳐 무릎까지 길게 늘어뜨리고 있다. 오른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여 무릎 위에 놓고 왼손은 반대로 손등을 보이며 무릎 위에 얹고 있다. 세 번째로 불상 종류를 알 수 없어 명패에 미상이라 쓴 보살좌상은 머리 위로 보계(寶?)를 높게 올리고 양쪽에 장식을 붙였다. 목걸이를 하고 가슴에는 천의를 사선으로 걸치고 있다. 손의 조각도 투박하고 양손을 모두 무릎 위에 올려놓았는데 오른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고 있어 특이하다. 마지막으로 유마거사라는 명패가 붙은 불상은 머리에 두건을 쓰고 책상 앞에 한쪽 다리를 세우고 앉아 있는 모습인데, 왼손에 약병과 같은 지물을 들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이처럼 용화사의 석조불상들은 크기와 도상이 제각기여서 동시에 조성된 상들이 아님은 분명한데, 대체로 앞의 거불 두 상은 조성시기가 고려시대 전반까지 올라갈 것으로 추정되나, 나머지 상들은 조각양식이 매우 불분명하여 조선시대까지 내려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이 상들은 「청주목지도」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청주의 여러 사찰에 봉안되었던 석불들이 폐사로 인해 한곳에 모아져서 오랫동안 전하던 상들로 추정된다. 이로써 이 석조불상들은 유래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으며, 따라서 청주의 불교문화 전통과 함께 특히 운천동 지역의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들이라 할 수 있다.(참고문헌: 충북문화재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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