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엽편소설] 내 꿈
'글. 박순철'

“송 면장, 언제 살구나무골로 들어갈 거야?”
“아직 몇 년 남았어. 야, 이런 자리에서는 이름 부르라고 했잖아.”
“그래도 지엄하신 면장님의 존함을 감히........”
“알았어, 그러면 너희 동네 농로 포장사업비 취소시킨다.”
“아, 아니야, 성질은 여전하군. 하 하 하”
“하 하 하”
고향 친구들과 모임이 있는 날이다. 친구들은 사석에서도 나를 면장이라 부르는데 정감이 떨어지는 것 같아 듣기 싫다. 여러 모임 중에서도 나는 이 모임을 제일 좋아한다. 다른 모임에선 술이 취하지 않아도 이 모임에선 술이 취해서 돌아간다.
“집은 언제 지을 건데?” “뭐가 그리 급해, 천천히 지을까 생각 중이야”
“춘규도 살구나무골에 집짓기로 했다며?”
“그래, 혼자 살다가 밤에 돼지라도 내려오면 같이 쫓아줄 사람이 있어야 할 거 아냐. 그래서 춘규 보고 터를 준다고 했어.”
“준혁이는?” “준혁이에게도 터를 준다고 했지. 그런데 집 지을 생각이 없는가 봐. 너희들도 살구나무골에 들어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해. 집 지을 만큼은 공짜로 줄게”
“나는 싫다. 지금 있는 집에서 늙어 죽을 거다.”
용택이는 나고 자란 집이 제일인가보다. 나는 아직 퇴직이 3년 정도 남았다. 그 후에는 고향에 들어가 살 작정으로 조금씩 밑그림을 그려 가고 있는 중이다. 선산이 있는 살구나무골에 한옥을 짓고 싶다고 했더니 춘규는 불란서풍의 집을 짓겠다고 했다. 멀리서 그 풍경을 바라보면 정말 근사할 것 같았다. 봄에는 집 주변에 금낭화를 심고 가을에는 메밀을 심어서 하얀 메밀밭을 걸어보고 싶다.





“그런데 준혁이 그 친구 좀 이상한 것 같지 않아?” “뭐가?”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이 제 것만 알고 남의 것은 모르는지 이해 안 갈 때가 많아.”
“준혁이는 어려서부터 무척 고생 한 사람이야. 우리가 이해해야지.”
“아니 그래도 그렇지. 우리 아들 결혼식에 오지도 않았어. 어떻게 친구 간에 그럴 수가 있느냐고?”
지난번 아들 장가보낸 정한이가 몹시 서운한 듯 입에 거품을 물다시피 말했다.
“그럴 것 없어. 준혁이 아들 장가갈 때 서울 올라간 사람 없잖아. 그러니까 안 온 거겠지.”
“아니, 청첩장을 보냈으면 당연히 가야지. 우리 친구 중에 청첩장 받은 사람 있으면 손들어봐?”
정한이가 좌중을 둘러보며 말하자 모두 수긍하는 듯 아무 말이 없다.
“그런데 준혁이 이 친구 오늘도 참석 안할 모양인 것 같은데”
“회비는 잘 내는 거야?”
“그러면 무슨 걱정이겠어. 1년도 더 밀렸어.”
어려서부터 준혁이는 가난이 무슨 죄나 되는 듯 늘 기가 죽어있었다. 나와 준혁이, 춘규는 동갑내기 소꿉친구지만, 준혁이는 우리하고 잘 놀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나 춘규네가 그리 잘 사는 집도 아니었다. 우리가 중학교에 들어가자 준혁이는 서울로 올라갔다.
군 복무 후 어렵게 5급(현재 9급)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고향 면사무소에 발령을 받고 근무를 시작할 때였다. 춘규는 나 보다 3년 먼저 축협에 취업하여 외지로 나가고, 그때 준혁이가 호적등본이 필요하다며 나를 찾아왔다. 오랜만에 만난 고향 친구여서 그를 데리고 시장 골목에 있는 막걸릿집으로 향했다, 술이 한잔 들어가자 준혁이는 그동안 고생한 이야기를 띄엄띄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를 악물고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구두닦이, 짜장면 배달, 좀 더 커서는 주방장, 웨이터 등등. 근근이 돈을 모아 시내 변두리에 허름한 짜장면집을 내어 정말 열심히 일했다. 색시도 얻고 아들 형제를 낳았지만 먹고사는 게 바빠서 그때까지 결혼식이나 혼인 신고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다음 달에 결혼식을 올려야 하는데 서울에는 친구가 없어 어찌했으면 좋을지 난감하단다. 그 결혼식에서 나는 사회를, 춘규는 접수를 봤다. 그리고 누가 더 참석한 것 같은데 생각이 나지 않는다.
준혁이는 결혼식 후에도 고향마을에 자주 내려오지 않았다. 설 명절에 한 번 다녀가는 게 고작이었다. 시골에 홀로 계신 어머니에게는 철철이 보약을 해서 보내온다고 했다. 청상에 홀로되어 과분한 후처 자리가 더러 나왔지만 모두 외면한 채 오로지 외아들만을 바라보고 살아온 불쌍한 분이다.
“준혁이 서울에서 돈도 못 벌었나 봐. 그러니까 저희 어머니 살던 다 쓰러져가는 집, 수리도 앉고 그냥 살고 있잖아.”
“그래. 그것도 달랑 혼자 내려와 있는 것 보면 안 됐어. 우리가 이해하자.”
“그래 다 좋아, 지난번에 우리 집사람이 김치를 담아서 조금 갖다 주었는데 어찌나 안 받으려고 하는지 좀 서운하더라고.”
“그나저나 오늘은 나오려나?”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준혁이가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자, 자, 빈속에 석 잔, 그래야 진심을 쏟아놓지….”





총무 충일이가 너스레를 떨며 술을 권하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술을 마시지 않던 준혁이도 오늘은 두 잔이나 받아 마시더니 모두를 놀라게 하는 발언을 했다.
“친구들아 정말 미안하다. 나 같이 쓸모없는 인간도 친구로 받아준 너희들이 고맙다.”
“무슨 말을 하려고 그리 거창하게 나오냐?”
“내가 서울에 올라가서 고생한 이야기는 친구들이 더 잘 알 거야. 지금도 꼭 해보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그것은 중학교 교복을 입고 학교 가서 공부하는 거였어. 이제 영원히 이루지 못할 꿈이 돼버리고 말았지만 말이야.”
장내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서울 있는 아내에게는 일찌감치 혼자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혹독한 훈련을 시켰어. 아들놈들은 대학교까지 졸업했으니 제 식구 건사는 할 것이고,”
이게 무슨 말인가?. 꼭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의 유언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악착같이, 그러나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진 않았어. 남에게 술도 얻어먹지 않았어. 우리 아들 결혼식은 아무도 초대하지 않고 양가 식구만 모여서 식을 올렸다네. 그래서 남에게 손가락질도 많이 받았지. 그렇게 모은 돈으로 부천 변두리에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돌산을 조금 사두었는데 그곳이 개발되면서 땅값이 많이 올랐어. 그 땅을 처분해서 나처럼 공부에 한이 맺힌 학생들을 돕고 싶은데 나는 아는 것도 없고 무식하잖아. 그러니 친구들이 대신 그 돈으로 장학회를 만들어서 관리도 하고 장학금을 지급해줬으면 좋겠어.”
“….”
“작년에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어. 마지막으로 인간답게 살아보려고 노력했지만 이제 늦은 것 같아.”
“어째 이런 일이?”
친구들의 입에서는 진한 탄식만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EDITOR 편집팀
박순철 작가
이메일 : tlatks1026@hanmail.net
1994년 월간『수필문학』등단
한국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수필문학충북작가회장, 충북수필부회장 역임.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현)
중부매일『에세이뜨락』연재(2008∼2011)
충북일보『에세이뜨락』연재(2012∼2013)
충청매일 콩트 연재 (2015∼2018)
충북수필문학상 수상 (2004년)외 다수
수필집『달팽이의 외출』『예일대 친구』『깨우지 마세요』
콩트집 『소갈 씨』
엽편소설집『목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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