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상사화
'글. 이정연'

해마다 장마가 한 두 차례쯤 지나고 나면 시골집에 가 본다. 저 혼자 멀쑥하게 꽃대를 키우고 수줍게 볼우물 짓는 산골처녀처럼 풋풋한 상사화를 보고 싶어서다. 시골집에 상사화가 자라기 시작한 건 내 나이와 비슷하다. 골목 입구 탱자나무 아래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곳에 자리를 잡고 단 한 해도 거르는 법 없이 가장 먼저 봄소식을 알려 주었다.
상사화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초등학교 일 학년 때다. 늦었는데 학교는 갈 생각 않고 나는 손톱만큼 싹이 올라오는 상사화 파란 잎을 발로 뭉개고 있었다. 깜짝 놀란 어머니가 왜 여태 안 가고 있느냐고 물으면 그제야 나는 크레용이며 준비물을 이야기하며 울먹였다. 어머니는 상사화를 다시 다독다독 묻어두고 이웃을 돌며 아쉬운 소리를 한 끝에 꼬깃꼬깃 접은 지전을 내 손에 쥐어 주었다.





우리 집에 있던 모든 꽃의 고향은 어머니의 고향과 같다. 어느 해 봄날 황매화가 핀 가지를 잡고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이 황매화가 피었으니 친정에도 지금쯤은 피었겠지....' 시집온 지 한 번도 친정에 다니러 가지 못하셨던 어머니는 친정이 그리우면 오빠를 당신 대신 보냈다. 오빠는 어머니가 조각 천을 꼼꼼히 이어 붙여 만든 베갯잇이나 산에서 캐서 말려둔 삽주 등을 외할머니께 가져다 드렸고 올 때는 어머니가 부탁한 꽃씨나 구근들을 얻어왔다. 봄이면 장독대에 어김없이 꽃을 피우던 백합, 나리, 마당 가장자리에 있던 달리아, 사립문 옆의 황매화, 텃밭의 모란, 작약들을 하나하나 친정에서 얻어와 집안 구석구석 적당한 곳을 찾아 심어 주었다. 친정과 꼭 같은 장소에 그 꽃들을 심어둠으로서 어머니는 친정에 대한 그리움을 꽃에 담아 달랬을까.
어머니 돌아가시고 몇 해 후 유난히 긴 장마에 시골집이 무너지지 않았을까 돌아보러 들렀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여전한 건 대나무뿐이었고 추억이 담긴 많은 화초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무성한 탱자나무 울타리는 토사가 흘러내려 뿌리가 여기 저기 드러나고 잡초가 빠르게 집 주변은 점령해 우리의 삶의 흔적을 다 지워 버렸는데 그 폐허 속에서 한 무더기의 상사화가 일제히 연분홍 꽃대궁을 밀어 올리고 있었다. 퇴락 해 가는 빈집을 지키며 더욱 맹렬한 기세로 식구를 불려놓고 우릴 기다려준 상사화가 내겐 단순한 화초가 아니었다. 기약 없이 떠난 주인을 기다리다가 마침내 그리운 발자국 소리를 듣고 일제히 내지르는 꽃의 함성은 가슴 뜨거운 감격이었다.





상사화는 잎과 꽃이 완전히 따로 나고 진다. 삭풍은 여윈 가지 끝에 머물고 다른 새싹들은 아직 겨울잠에 빠져있는데 상사화는 혼자 깨어나 봄을 부른다. 굳어 있던 언 땅을 힘차게 밀고 올라온 새싹을 보면 새봄이 주는 희망이라고 부르고 싶다. 봄빛을 담뿍 받으면 이내 설움 같은 암녹색 잎이 한 50-60센티쯤 자라고 옆으로 기울며 무성하다가 장마라도 지면 잎은 일시에 허물어져 내린다. 그 모습을 보면 마치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을 가슴에 안고 스스로 생을 마감해 버린 청년의 최후처럼 처참하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다리기 여러 날, 더욱 아름답고 청초한 모습으로 홀연히 청년의 무덤을 찾아온 처녀처럼 조용히 꽃대 하나가 밀어 올려 진다. 수줍게 부푼 봉오리는 이내 꽃을 피우고 연분홍빛 환한 웃음을 뿌리다가 청년을 따라 가듯 조용히 그 자리에 허물어진다. 잎은 꽃을 볼 수 없고 꽃은 잎이 진 뒤에 피어 서로 그리워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상사화(相思花) 그 흔적이라도 찾을까 살펴보았으나 눈물 자국 같은 마른 꽃잎만 희미하다.
어머니가 심으셨던 다른 화초나 나무는 지금은 거의 다 사라지고 없다. 우물가의 앵두나무도 뒷산에서 밀려온 토사에 깔려 거의 죽고 그 많던 더덕도 다 없어졌다. 손톱을 곱게 물들여 주던 봉숭아도 까만 씨앗을 실에 꿰어 목걸이 만들었던 나리도 사라져 이제는 추억조차 잊혀져 가는데, 안타까운 사랑에 대한 열망처럼 상사화는 해갈 갈수록 식구가 불어났다. 이제 울타리 아래는 작은 멍석 만하게 번졌고 일부는 다시 집 쪽으로 옮겨 앉아 제법 광주리 만하게 숫자를 불려 놓았다.
어머니는 왜 하필 이런 척박한 땅 탱자나무 울타리 아래 상사화를 심었을까. 집안에도 상사화를 심을 만한 장소는 많다. 이 백 평도 넘는 대지이니 어느 구석에 심어도 초가와는 한 편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어울렸을 것이다. 많은 세월이 흐른 후 비로소 나는 어머니의 마음을 짐작하게 되었다. 밖에 나갔다 오는 사람을 가장 먼저 보고 반기게 되는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오르막길을 걸어 우리 집으로 올라오면 자연스레 눈길이 가 머무는 곳에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어머니는 애절한 꽃의 이야기를 묻어 두고 싶으셨던 것이다.
이제 나는 딱 어머니 가실 때쯤 나이가 되었다. 어머니 기일을 맞아 산소도 돌아볼 겸 고향집에 들렀을 때 울타리 아래 막 돋아난 상사화 새싹들이 밭을 이루고 있었다. 늘 골목 어귀를 서성이다 우리를 맞아준 어머니 같은 상사화가 반백년이 되도록 그대로인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상사화 구근 몇 개를 뽑아 왔다. ‘어머니 이제 영원히 우리 함께 살아요!’ 하는 마음으로.

EDITOR 편집팀
이정연 작가
이메일 : manjuyeon1@hanmail.net
2003년 4월 수필문학 등단.
2004년 중부매일신문 세정유감코너 짧은 수필 집필 (1월-4월까지)
2004년 여름호 수필 ‘망월사에서’ 에세이문학 등단
2004년 영남수필 회원 –2019년
2006년~2008년 에세이문학 올해의 수필 20선 추천
에세이문학 수필과 비평 에세이21 수필사랑 대구문협지 다수 기고
2011년 - 현재 대구 달서구 현대힐공인중개사 소장
본 칼럼니스트의 최근 글 더보기
해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