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정책주간지 K-공감
고목이 눈부신 꽃을 피워낼 때
'옛 그림이 전하는 지혜'

남쪽에서 매화소식이 들려온다. 봄의 전령이라는 매화사진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설렌다. 매화를 찾아 탐매행(探梅行)을 떠나볼까. 들썩거리는 충동을 주체할 수 없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 행여 우리 동네에도 매화가 피었을까 싶어 단지 구석구석을 돌아보지만 소용없다. 매화줄기에 붙어 있는 꽃송이들은 입을 앙다문 채 도무지 마음을 열 생각이 없어 보인다. 매화가 입을 열고 향기로운 목소리를 들려줄 때까지 진득하게 참아야 한다. 기다림이 지루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심정이 다들 비슷할 것이다.
봄이 되기까지 찬바람 부는 겨울의 시간을 가장 먼저 해제해준 꽃이 매화다. 수많은 시인이 성급하게 나귀를 타고 매화를 찾아 눈 속을 뚫고 나간 것도 봄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올해도 내게 봄이 허락된 것일까, 라는 의구심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다. 특히 겨울을 넘기기 힘든 노년기에 봄을 맞이한다는 사실은 눈물겹도록 감사하다. 꽃이 피어나듯 또 한 해를 살 수 있게 허락받았기 때문이다.

장승업, ‘홍백매도10곡병풍’, 종이에 채색, 90×433.5㎝, 리움미술관



장승업의 ‘홍백매도10곡병풍’은 도착하지 않는 봄을 기다릴 때 감상하기 좋은 작품이다. 무려 10폭이나 되는 화폭 전체를 매화로 가득 채웠다. 장승업은 전체를 그리는 데는 관심도 없다. 고목의 위아래는 전부 생략한 채 옆으로만 길게 뻗은 줄기를 보여줬다. 만약 어느 한적한 찻집에 가서 가로가 긴 통창 너머로 매화나무를 봤다면 딱 저 그림 같았을 것이다. 전체 모습을 온전히 보지 않는다 해도 보이는 것만으로도 감동이 육박해오는 풍경이다. 기왕 보여줄 바에야 실컷 즐겨보라는 듯 인심도 후하다. 도대체 꽃이 몇 송이나 피었을까. 꽃송이를 세다 인생을 끝낸다 해도 여한이 없을 성싶다.
사람들은 고목을 쓸모없는 나무라고 무시한다. 그러나 매화는 고목에서 핀 꽃이 가장 아름답다. 꽃송이들이 잎사귀 하나 없는 고목에서 주렁주렁 열릴 때 꼭 환영을 보는 것처럼 아득해진다. 꽃멀미 하듯 아득해진 정신을 수습해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매화나무는 두 그루다. 앞쪽 나무는 강한 먹으로 진하게 그렸고 뒤쪽 나무는 연한 먹으로 흐릿하게 그렸다. 꽃잎을 자세히 보면 붉은 꽃과 흰 꽃이 뒤섞여 있지만 어느 나무가 홍매이고 백매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줄기의 끄트머리까지 눈길을 옮기면 흰 꽃과 붉은 꽃이 한 줄기에서 피어난다. 작가가 두 나무를 잠시 착각한 것일까. 그림 감상은 숫자로 측정하는 과학이 아니다. 다만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탄하며 탄식하듯 시를 내뱉는 은유의 세계다. 꽃 색의 대부분은 흰색이지만 눈길을 옮기다 보면 그 중간에 거짓말처럼 붉은색이 숨어 있다. 진한 먹으로 그린 고목의 껍질에는 연두색 태점이 촘촘히 붙어 있다. 고목에 붙어 있는 기생식물을 보여줄 의도였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연두색으로 찾아오는 봄빛을 드러내고자 함이다.
장승업은 어떤 화가인가. 하늘이 내린 천재였지만 일자무식에 술과 여자만 밝혔다는 풍문이 사실처럼 전해져왔다. 과연 그 말은 진실일까. 두 마리 매를 그린 ‘호취도’만 보고 그가 호방한 필치로 거친 붓질만 남겼다는 선입견을 갖는다면 이 매화도는 결코 이해할 수 없다. 한 작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체를 봐야 한다. 전체를 보려면 시간이 걸린다. 꽃을 보려면 개화의 순간까지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듯이. 올봄에는 조금 더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개화를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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