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오름, 그 험난한 여정
'글. 최명임'

연어는 물살을 거슬러 올라야 하늘이 보인다. 나무는 그 하늘로 줄기차게 오른다. 칡넝쿨은 옆으로 뻗는 운명인데 나무를 휘감고 오른다. 그 집착이 서늘하다. 앉은뱅이 꽃도 틈새를 비집고 하늘바라기 하고, 식탁 위의 화초도 해 뜬 곳을 알고 있다.
아래만 보고 사는 이가 있으랴. 만물은 올라가야만 하는 숙명을 타고난 존재들이 아닌가. 가당찮은 욕심으로 분별심을 잃어버릴 때가 문제이다. 야금야금 남의 영역을 침범해 목을 조이다 급기야는 명줄을 끊어놓는 칡넝쿨처럼.
위로 오르는 것은, 지상의 모든 울음이 승천하는 일이다.
앞만 보고 걷다가 어느 날 문득 고개 떨구고 보니 냉랭한 시멘트 바닥이다. 발자국에 딸려 온 흙이 물과 기름처럼 겉돌고 스산한 낙엽은 이방인처럼 어색하다. 본질을 잃어버린 것들이 무색하게 뒹군다. 시멘트가 억압한 땅에서 무엇이 살 수 있으랴. 살아내지 않으면 끝나버릴 생명들이 이유를 들이대고 끊임없이 그 위에서 길을 내고 있다.
공원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른다. 어디서 오는 길인가, 발아래 개미 떼가 대이동을 하고 있다. 사람의 발자국 하나만 내면 수백 마리가 몰살할 위험지역이다. 감수하고 떠나는 행렬이 끝이 없어 시작이 어딜까 하고 되짚어 가보았다. 어림잡아 4~5m가 넘는 행렬이다. 인간의 욕망으로 점철된 전쟁터를 피해 나선 억울한 행렬일까. 심지를 세우고 꿋꿋이 한 방향을 향해 가는 무리가 대부분이다. 신념에 찬 전진이다. 우왕좌왕하다 떠밀려 전진하는 무리에 묻혀가는 놈, 염통이 비뚜로 앉았는지 역방향을 고집하는 놈, 아예 대열에서 멀찌감치 이탈해 버둥거리는 놈 아비규환이다. 사변 통에 갈라져 버린 이념처럼 그들도 조만간 두 개의 이념 속에서 더욱 흔들릴지도 몰라. 갈라진 땅덩어리 그날의 통한을 보듯 혼란의 시간이다. 어딘가에서 멈추면 그들은 하나로 뭉치거나 갈라져 오름을 향해 몸부림치겠다.





땅에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생명들이 무수하게 살고 있다. 검정 개미 두 녀석이 삶을 이끌고 간다. 바싹 말라버린 지렁이가 오늘의 수확물이다. 제 몸의 수십 배가 되는데 무게를 감당하다니. 운수 좋은 날이다. 작으면 눈에 차지 않고 넘치면 지고 갈 수 없을 텐데 횡재임이 틀림없다. 횡재라면 사람도 눈에 불을 켜는데 그것이 악재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염두에 두었는지 모르겠다. 둘이 물고 늘어지더니 한 녀석은 공중으로 딸려 올라가고 또 한 녀석은 뒤로 나자빠진다. 흥건한 땀의 무게를 가늠할 수가 없다. 도와주고 싶은데 내가 끼어든다면 강자의 오만이다. 제가 짊어져야만 하는 무게가 있기에.
서늘한 낙엽 하나가 길을 막는다. 한 녀석이 손을 놓아버리고 갈팡질팡한다. 앞서 이끌던 녀석은 제 물건을 지키려고 물고 늘어지다가 낙상해버렸다. 어디 한 곳 생채기가 났을 법도 한데 다시 물고 늘어진다. 짐작건대 그 녀석이 가장인 듯하다. 어미가 가장이 되면 괴력을 발휘한다. 그녀라는 대명사를 붙여야겠다. 결국, 나의 오지랖이 발동해 장애물을 치우고 말았다.
한참을 가더니 사내가 자리를 이탈했다. 앞을 살피러 가는 모양이다. 정찰하고 돌아왔는지 잔꾀였는지 알 수 없는 것이 더 큰 암초에 부딪히고 말았다. 안일함에 빠지는 순간 운명은 허를 치기도 한다. 대범한 남성성을 보여주면 좋으련만 사내가 기겁하고 물러선다. 주위를 빙빙 돌며 고심하는가 싶더니 아, 그가 떠나버렸다. 다른 길을 찾자고 아내를 달래보았을까. 길이 아니면 가지 말자고 손은 이끌어 보았을까. 그녀의 한강 같은 눈물이 보인다. 사내는 인간이 시멘트로 덮어버린 세상에서 숨 쉬는 통로를 잃어버린 거다. 시멘트의 차가운 심성을 배워버린 것이다.
오지랖은 마음을 내는 일이다. 마음은 때로 논리나 원칙을 앞선다. 결연한 마음으로 내가 암초를 제거하자 그녀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둘이도 버거운 길을 혼자서 간다. 차마 그녀를 두고 돌아설 수가 없어서 따라가며 지켜본다. 낯선 사람이 다가왔다. 킁킁 냄새를 맡으며 탐심을 자극하는 물건에 달라붙었다. 곁을 주지 않았는지 감당 못 할 일임을 알았는지 그도 금방 떠나버렸다. 나는 그녀를 알 수가 없다. 신념에 찬 저 발걸음이 도전인지 탐욕인지를.
최악의 상황에 부딪혔다. 그녀가 올라야 할 풀숲 앞에 인간이 경계석을 세워 두었다. 높은 시멘트 담 앞에서 암울한 절망에 빠진다. 사람들을 불러 장애물을 치워 줄 용기도 없는 내 오지랖은 결국 오만이었다. 불안한 동작으로 갈팡질팡하더니 헉, 그녀가 절망을 딛고 벽을 오르기 시작한다. 끝내 놓지 못하는 희망을 끌어안은 채 아아, 저러다 곤두박질치지. 제 몸도 부서질 텐데?.





절망이 바닥을 치면 오름이 시작된다. 꿈을 물고 절벽을 타고 올라 풀숲으로 들어선다. 풀숲이라면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곳. 거기 어딘가 분명 그녀가 힘겹게 달려와야 했던 명분이 기다리고 있을 터이다. 방심하는 사이 그만 엉클어진 풀에 지렁이가 걸려버렸다. 더는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 포식자들이 약탈할지도 모르는데 조바심이 난다. 아니 모든 것을 놓아 버릴까 봐 내가 겁이 난다. 급기야 참지 못하고 그녀를 땅바닥에 내려주었다. 수확물도 없이 그녀가 돌아갈라, 코앞에다 놀아주었다. 겁도 없이 내 손끝에 매달려 나온 개미가 슬슬 움직인다. 그제야 안심하고 돌아선다.
세상에는 참 많은 그녀들이 살고 있다. 아내로 엄마로 여자로 치열하게 살아오면서 눈물 한 동이는 예사로 흘려보았고 뜬눈으로 밤을 새워 본 일도 허다하였다. 오름을 향한 여정 앞에서 그녀들은 용기를 내었고 도전하였고 꿈을 이루었다. 오늘도 그녀들은 작은 몸을 이끌고 푸르디푸른 하늘을 향해 길을 나선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참 푸르기도 하다. 모두 저곳으로 오르겠다고 험한 길을 가며 저 고생하고 있는 거다. 그녀들은 지금 어느 모퉁이를 돌고 있을까. 나무와 연어와 앉은뱅이 꽃은 어디쯤 올랐을라나. 가벼운 마음으로 몇 발짝 가다가 돌아와 보니 그녀가 없다.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아, 드디어 그녀가 오름에 성공하였다.

EDITOR 편집팀
최명임 작가
이메일 : cmi3057@naver.com
2014년 문학저널 신인상
충북수필문학회, 한국문인협회, 한국산문 회원, 내육문학회원 / 충청타임즈 ‘생의 한가운데’ 필진(전)
청주교차로 신문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필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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