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고등어 등에 바다가 있다
'글. 최명임'

햇살이 잔물결을 타고 하느작거린다. 물 위에 낮별이 뜬다. 물새들이 바람을 물고 휘파람을 불어쌓는다. 쉼표를 찾아 떠나온 사람들 웃음소리 가슬가슬하다. 그 틈바구니에 그늘이 잔뜩 드리운 풍경 하나가 읽힌다. 우악한 손이 고등어 한 무리를 수족관에 쏟는다. 생명이 뒤엉긴 채 아우성친다. 숨을 할딱이며 탈출을 시도하다 사방 벽에 부딪힌다. 유리 벽 너머에는 푸른 바다가 일렁거리고.
포획자의 손이 거침없이 수족관으로 들어간다. 한 마리가 튀어 올라 땅바닥에 엎어진다. 바닥을 차고 오른 몸뚱이가 허공에서 버둥거린다. 바닥을 칠수록 맥이 풀리고 바다는 아득히 멀어진다. 생의 의지는 꺾였을지언정 혼불은 훠이훠이 날아 푸른 바다로 떠났다.
고등어는 본디 제 뱃살처럼 온몸이 은빛이었을 거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날들은 모두 어린 시절에 있었다. 바다가 그를 푸르게 물들이고, 물결을 그려 넣고 햇살은 물이랑을 따라가며 윤슬도 새겼다. 검푸른 등줄기는 아마 깊은 물인 듯, 차츰 옅어지는 곳은 물 언저리 같다. 맨 살에 박혀 버린 저 시커먼 물결무늬 조각들은 필시 파도가 할퀴고 간 흔적일 거다.
고등어가 한바다를 등에 지고 있다. 바다거북의 방패도 그 흔한 비늘갑옷도 없이. 기껏 한 척 몸뚱이에 달린 꼬리로 방향을 잡고 지느러미로 물살을 가른다. 태생적 이유로 늘 가슴을 조이며 떠도는 유목민이다.





내 고향은 초록 바다가 옆구리를 쑥 디밀고 들어앉았다. 좁은 바닷길로 들어오던 태풍이 바람막이 산으로 누그러지고, 겨울도 시답잖은 눈 흩뿌리다 마는 아늑한 곳이었다. 푸른 바람이 나울거리는 보리밭을 지나 벚나무 숲길을 따라 내려가면 세상으로 나가는 작은 바닷길이 보였다. 그 물길을 따라 통통배가 드나들었다.
선창엔 떠나고 돌아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꿈을 찾아, 꿈을 이룬, 꿈을 놓친 이들이 제각기 다른 표정을 하고 배에서 내리면 또 누군가는 그 배를 타고 세상으로 달려갔다.
오빠는 가문을 책임져야 하는 종손이었다. 팔 남매의 장남이라 그만한 그릇이 되려면 배워야 한다는 것이 아버지 지론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오빠를 우리 중 가장 먼저 그 바닷길을 따라 세상으로 내보냈다. 아버지는 장자에게 가문의 존폐와 팔 남매의 미래와 당신의 안위를 걸었다.
오빠는 아버지가 맞춤한 어항에 갇혀서 길이 잘 든 한 마리 생물 같았다.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잃어버렸다. 가끔 그 많은 말이 돌아와서 속이 울렁거리면 우리를 데리고 바다로 갔다. 와글와글 모여 물수제비를 뜨면 오빠의 돌멩이는 거침없이 나아갔다. 금방 굴러 내릴 것 같은 뒷산 지렁바우에 낮도깨비처럼 혼자 앉아 있곤 했다.
탈출을 시도한 적이 한 번 있었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 감시를 벗어나 유도를 배웠다. 오빠는 내심 어항을 박차고 나갈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책만 파던 서생의 낯선 도발이 들킬까봐 어머니는 좌불안석이었다. 어느 날 사랑에서 한바탕 입씨름이 오가고 저렁저렁한 아버지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대학도 체육과로 갔지만, 운동으로 먹고 살기는 어려운 시절이었고 힘의 세계에서 일인자가 되려면 생계는 접어 두어야 했다.
오빠가 대학을 졸업하자 아버지는 이웃 처녀에게 매파를 넣었다. 삶의 무게를 아들에게 넘기고 ‘아비가 하듯 너도 그렇게 해라!’하고 족쇄를 채웠다. 오빠는 한바다 같은 삶을 등에 지고 물 좋은 곳을 찾아 떠돌아다녔다. 거구의 덩치에 압도당하고 이빨에 할퀸 흔적이 역력했다.
아버지가 가신 뒤에도 오빠는 여전히 아버지에게 갇혀 있었다. 몇 번 박차고 나와 펄떡거려보았지만,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좁은 어항에 갇힌 채 영법을 배운 오빠에게 세상의 파도는 버거웠고 인간 생태계는 북극의 바다만큼이나 차가웠다.
명절을 쇠고 출근한 남편이 황망히 뛰어 들어왔다. “오빠가 죽었대!” 벗의 죽음을 알리는 청년의 눈에서 허망한 물기가 후드득 떨어졌다. 햇살이 유별나게 쏟아졌다. 오빠를 비켜 간 햇살 아래 사람들은 활린처럼 펄떡거렸다. 어느 계절의 냉기에 에이다가 숨길을 놓쳤을까. 사인은 분분했지만, 과로로 인한 심장마비라고 했다.
고향에 갔다가 오빠의 벗들을 만났다. 그들은 허허롭게 돌아와 누운 죽마고우를 잊지 않았다. 유일하게 도회지로 유학 간 벗이 큰물을 누비며 살 거라 기대했단다. 시절을 잘못 만나 인습의 사슬에 묶여 살다, 홀연히 떠난 안타까운 친구로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 올 때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다. 어떤 것에도 걸림이 없는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었던가. 관습에 묶이고 관념과 제도에 구속되어 그것이 삶의 원칙인 양 벗어나지 못한다. 장자는 하늘이 내는 거라고들 했으니, 오빠는 태생적 포승에 묶여 동맥 같은 꿈을 놓치고 살아갈 의지도 놓아버린 거다. 가지지도, 버리지도 못한 한바다를 등에 지고.





오빠의 삶은 고등어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바다거북의 갑옷도 상어의 이빨도 갖지 못한 설움, 꿈이 있으나 펼쳐 볼 기회도 없었다. 이번 생을 바꾼다면 고래가 될 수 있을까. 죽어서도 놓지 못한 소망 하나 품고 바다가 보이는 곳에 묻혔다.
한 번의 생에서 원하는 것을 다 이룰 수 있으랴. 한바다가 허망한 꿈이라면 오빠는 다시 한 번 돌아와 자유로이 살아 보고 싶었던 거다. 자유롭다면 행선지가 따로 있으랴. 발길 닿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유영하다 어느 만灣에 머물더라도 순전히 자유의지일 테니.
숨탄것들은 모두 꿈을 꾼다. 희망 하나로 오늘을 견디며 내일을 찾아 나선다. 그리하여 더 넓은 바다로 가서 지느러미를 파닥이며 상어가 되고 고래가 되고 싶다. 작은 물을 휘저어 가다가 봄날을 놓쳐버린 고등어처럼 많은 날을 흔들릴지라도.
아득한 수평선을 바라본다. 지는 햇살 위로 구름이 다시 무리를 짓는다. 지금쯤 오빠는 저 노을 너머, 드넓은 바다에 고래가 되어 유영하고 있으려나.

EDITOR 편집팀
최명임 작가
이메일 : cmi3057@naver.com
2014년 문학저널 신인상
충북수필문학회, 한국문인협회, 한국산문 회원, 내육문학회원 / 충청타임즈 ‘생의 한가운데’ 필진(전)
청주교차로 신문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필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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