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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공예와 사람 또는 사랑이야기

2017-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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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공예와 사람 또는 사랑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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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이 뾰족한 원형송곳, 찔릴 수 있는 바늘, 삐죽한 디바이더(가죽에 선을 긋는 도구), 날카로운 칼, 포크처럼 생긴 치즐(가죽에 구멍을 내는 도구), 두들기는 망치 그리고 수많은 힘을 필요로 하는 거칠어 보이는 도구들. 과히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는 도구들이며, 이 도구들은 가죽공예 작업과정에 있어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이다. 가죽공예는 안전을 위해 늘 신경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과정이 많다. 어찌 보면 이렇게 안전을 신경 써야 하는 날카롭고 뾰족한 도구들을 사용하는데 그 어찌 몰입하지 않을 수 있으랴? 하지만 “그런 이유로 가죽공예를 할때는 반드시 몰입이 필요하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가죽공예에 꼭 필요한 도구들 : 디바이더, 칼, 엣지, 베베러, 치즐 등
    
    작업환경에 의해 몰입을 강요당해야 하는 거였다면, 몰입을 하는 순간은 그 자체가 스트레스일 것이다. 안전을 위해 늘 집중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몰입은 집중이상의 상태이다. 심리학적 용어에선 무언가에 푹 빠져 심취해 있는 무아지경 상태라고 한다. 나는 그런 무아지경상태를 자주 갖는다. 그리고 공방에 찾아와 배우며 만들며 무아지경에 빠진 분들 보는 행복감도 느끼고 있다. 자 이제 사람들의 이야기를 몇 가지 해보겠다.



story 1. 남편을 위해 제작 의뢰한 아내사랑 가죽약통

    올 봄 뇌혈관 질환으로 갑자기 쓰러진 남편. 다행히 자신과 함께 있었기에 바로 병원을 가서 큰일을 모면했다고 한다. 그 후 남편 혼자 있을 때 갑자기 벌어질 수 있는 응급상황을 대비하여 남편은 늘 약을 지녀야 했다. 그런데 약은 원통형 유리약병에 들어있어 한 번 손에서 미끄러워 떨어지기라도 하면 깨지기 십상이었다. 그래서 부인은 유리약병을 담을만한 튼튼한 케이스가 필요했고 공방에 찾아와 위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가죽으로 특수 케이스를 의뢰하였다. 그녀는 남편의 취향을 고려해 가죽을 고르고 정확한 사이즈를 알려주기 위해 유리약병을 나에게 맡겼다. 공방에서 수업도 진행하니 내가 가르쳐주며 그녀가 직접 남편을 위해 만들었을 수도 있었지만 특수한 케이스를 더 전문적인 손길로 잘 다듬어지길 바라는 그녀의 마음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만드는 내내 그녀의 남편에 대한 사려 깊은 마음은 나를 몰입의 경지로 데려가 주었다. 며칠 후 허리에 차고 다닐 수 있는 튼튼한 가죽약통이 완성이 되었다.


story 2. 엄마표 아들사랑 가죽 서류가방

    대학생인 아들. 곧 가을학기가 시작할 것이고, 머지않아 사회에 첫 걸음을 내딛을 것을 생각하며 엄마는 아들을 위해 혹독한 더운 여름을 가죽공예의 작업과 씨름하는 시간과 바꾸었다. 가죽공예를 시작한지 거의 6개월 밖에 되지 않은 터였고 처음으로 서류가방을 만들려면 쉽지 않은 작업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작업과정을 차근히 그리고 조금의 실수도 허락하지 않고, 다시 뜯고, 수정과 수정을 거듭하며 한 달이 넘게 걸려 아들을 위한 100% 수 제작 서류가방을 완성한다. 작업하며 몰입하시는 모습은 엄마의 특별한 모정, 눈에 보이지 않는 그 큰 덩어리의 사랑을 느껴 볼 수 있었다.




story 3. 남자친구를 위해 깜짝 생일 선물로 수제 카드지갑을 만들다.

    곧 다가올 남자친구 생일을 위해, 수제 가죽제품을 직접 공들여 만든 선물을 하고 싶은 그녀. 본인이 원하는 스타일로 남자친구에게 잘 어울릴 카드지갑을 만들려 한다. 물론 마음만은 서류가방을 만드는 심정으로 가죽공예에 첫 발을 내딛었다. 공방에 찾아와 가죽도 정성들여 고르고, 직접 패턴도 뜨고, 가죽을 자르고, 과정이 지날 때 마다 실수 없이 멋지게 완성한 선물을 주고픈 그녀의 열정적인 모습이 참 예뻤다. 이렇게 마음을 담아 준비한 선물을 남자친구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아니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남편을 위해 제작된 약통, 아들을 위해 만든 어머니의 서류가방, 남자친구 생일선물로 만든 애정 어린 카드지갑 그리고 수많은 마음으로 가득한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 어떤 제품과도 비교 할 수 없는 몰입이 만들어낸 작품들이다. 한해 두해가 지나면 그 값진 가치가 더 커질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가 담긴 생명력이 있는 가죽제품은 여타 공산품의 새것 냄새가 덜 날 수 도 있지만 더 값진 사람 냄새가 난다. 왜냐하면 그들의 혼이 깃 들여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또는 나를 위해 작업하며 집중하는 즐거움, 세상에 없는 나만의 독창성으로 완성되는 값진 작품, 이것이야 말로 가죽공예의 즐거운 몰입이 주는 선물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