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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예지몽(豫知夢)

2023-06-14

문화 문화놀이터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예지몽(豫知夢)
'글. 유병숙'

    창문을 내다보니 낡은 집이 깜깜하게 엎드려 있다. 마당의 아름드리 소나무가 바람에 일렁이는데, 순간 불이 일어나더니 집은 물론 사방이 화염에 휩싸였다.   
꿈이었다!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꿈을 복기하다 창으로 다가가 앞집을 바라보았다. 집은 천연덕스럽게 서 있었다. 괜한 개꿈이었네. 쓴 침을 삼켰다. 남편은 불이 난 꿈은 재수가 좋다고 하니 로또를 사라고 했다.  
    이틀이 지났다. 저녁 무렵 갑자기 펑 하고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달려가 보니 앞집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불길은 걷잡을 새 없이 번져나갔다. 소나무에도 불이 옮겨붙었다. 뒤늦게 소방차가 달려왔다. 사람이 있어! 소방관들이 집 안으로 뛰어들었다. 몇 번의 시도에도 구조가 여의찮아 보였다. 불은 가스레인지에서 시작되었다 한다. 집은 잿더미로 변했다. 소름이 돋았다.
    불탄 집을 볼 때마다 의문이 밀려왔다.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을 통해 인간의 의식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무의식’의 존재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렸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무의식의 언어를 해독하는 ‘정신분석’을 창시했다. 그의 학문에 기대어 나의 꿈도 해석이 가능할까? 나의 무의식 어딘가에 혹시나 예지력 비슷한 것이 숨어있는 게 아닐까? 예지몽이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꿈을 자주 꾸었다. 커다란 감이 다닥다닥 열린 꿈을 꾸기도 하고, 손목에 금목걸이를 칭칭 감다 잠에서 깨기도 했다. 시어머님은 태몽이라며 딸, 아들을 점치셨다. 친정아버지의 산소 자리를 보러 갔다가 전에 꿈에서 보았던 풍광과 같아 놀라기도 했다. 산소 봉분에 물이 고여 있는 꿈을 꾼 날, 찜찜해서 가보았더니 봉분이 일부 패이고 훼손되어 있어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시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 검은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저승사자 두 명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꿈을 꾸고 소스라치기도 했다. 돌아가신 아주버님이 괴로워하는 꿈을 내리 사흘 연속 꾸기도 했다. 이야기를 들은 시누이는 오랫동안 찾지 못했던 아주버님 산소를 돌아보고 남자 한복을 태우며 혼을 달랬다 한다. 해바라기가 나란히 서 있는 꿈을 꾼 며칠 후 딸이 남자친구를, 나중에 사위가 될 청년을 소개하기도 했다. 
    꿈과 현실이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가끔 있어 나는 골똘히 꿈을 되짚어 보는 버릇이 생겼다. 친구들은 꿈을 꿀 때 기분이 좋으면 맞는 것이고 기분 나쁘면 반대로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하나 마나 한 소리에도 귀가 솔깃했다. 나는 아예 꿈풀이 책을 사들였고, 재미 삼아 뒤적이곤 했다.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은 꿈풀이 해달라며 전화를 해댔다.   
    하루는 느닷없이 하얀 상복을 입은 친구가 수레에 실려 대문 밖으로 나가는 꿈을 꾸었다. 공연히 가슴이 떨려왔다. 친구 신상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걱정되었지만, 너무 이른 아침이라 나중에 전화하자 했다. 한 시간여가 지난 후 전화벨이 울렸다. 친구가 불의 교통사고를 당해 그 자리에서 절명했단다. 너무나 놀라 듣고도 믿어지지 않았다. 지방에 살고 있어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전화로 속내를 털어놓곤 했던 친구였다. 친구의 부음이 온통 내 탓인 것만 같았다. 꿈의 세계를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는 나는 그 후 꿈 이야기를 삼가게 되었다.  





    지나고 보니 꿈으로 미래를 본다는 건 확신이 서지 않는 일이었다. 해몽이 맞아도 좋은 마음 반, 조심스러운 마음이 반이었다. 인생 전반을 뒤흔드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나는 예지몽을 꾸기는커녕 눈을 뜨고도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예지몽이라 믿었던 꿈들은 실상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았다면 묻히고 말 일이었다. 한때 나는 꿈에 의한 기시감에 사로잡혔는지도 모른다. 그날, 불길로 뛰어들던 소방관들의 경이로운 모습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그러고 보니 꿈은 현실보다 미약하기 그지없다. 인생의 씨줄과 날줄은 수많은 선택으로 엮여있다. 이에 무의식이 나도 모르게 작동했으리라. 어쩌면 나는 견디기 어려운 현실을 맞닥뜨릴 때마다 꿈속으로 도망치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잡초를 뽑으려고 환한 대낮에 밭에 앉아 있으려니 자꾸만 생각이 과거로 돌아간다. 나이가 들수록 지나온 날들이 한바탕 꾼 꿈같다던 어른들의 말을 실감하게 된다. 젊어서는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했다. 내리 쏘이는 햇빛 탓인지 지나온 일들이 빛바랜 사진처럼 떠오른다. 그때는 그랬지! 했다가도 그런 일이 있었나 싶기도 하다. 생각이 우후죽순처럼 솟았다가 가물가물 사라지기도 한다. 마치 꿈꾸듯 영상들이 지나간다. 
    불난 집은 이제 산뜻한 새집으로 단장되었다. 활기찬 중년 부부가 텃밭을 만들고 있다. 불이 났던 터는 재수가 좋다는데 했다가 쓰게 웃는다. 요즘 나는 꿈을 꾸지 않는다. 예지몽도 잊은 지 오래다. 현재에 집중하고 충실하게 살아가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오늘을 잘 살아내면 초라했던 과거마저 빛이 난다고 하지 않던가. 눈을 뜨고 있어도 급변하는 미래는 예측이 어렵고 감히 개입하기도 버겁다. 그래도 꿈은 가끔 꾸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