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공감의 힘 - 봄날의 교실

2023-04-19

교육 교육학원


행복교육단상
공감의 힘 - 봄날의 교실
'복대중학교 교사 윤관희'

    여기 나라와 강산이라는 두 학생이 있습니다. 둘은 모두 중학교 2학년 학생이랍니다. 어느 날 오후, 강산이는 항상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나라가 한숨을 연거푸 쉬는 것을 보고 나라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묻습니다. 나라는 “동아리 기타 연주회를 앞두고 있는데 연주가 잘 안 돼.”라며 고민을 털어 놓습니다. 그 말에 강산이는 “그럼 연습을 더 해야지. 너 때문에 연주회를 망치면 어떡해?”라고 말하고 나라는 마음이 상해서 토라지고 말지요. 
    그런 나라를 보는 강산이의 마음도 편치 않습니다. ‘왜 그러지? 내 딴에는 생각해서 이야기 한건데…….’하고 생각하지요. 나라는 강산이의 말을 듣고 왜 마음이 상한 것일까요? 나라와 강산이 모두 마음을 풀고 다시 친하게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 여러분 모두에게 생각할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생각해 보셨나요? 
    사실 이 두 학생은 중학교 2학년 국어 교과서 ‘공감하며 대화하기’단원의 도입부에 학생들의 흥미 유발을 위해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실제 수업에서 학생들은 “강산이의 말투가 뭔가 건방지고 잘난 척하는 것 같아요.” 라고도 했고 “너 때문에 망친다는 말이 기분 나빠요. 너때문이라니요.”라고도 했답니다. 반면 어떤 아이들은 “나라가 이해 안 돼요. 연주회가 일주일밖에 안 남았는데 연습을 안 했다고 걱정할 시간에 얼른 가서 연습을 하면 되잖아요.” 라는 반응도 있었고 “나라는 맡은 일은 제대로 하지도 않고 걱정만 하는 거 같아요”라는 대답도 있었답니다. 





    정답은 무엇일까요? 힌트를 조금 드려 볼까요? 
    요즘 ‘공감(共感)’이 화두입니다. 책이나 전자제품은 공감 마케팅으로 물건을 팔고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공감이라는 단어를 찾기 어렵지 않으니 말입니다. 세대 간 공감, 성별 간 공감도 해결하기 위한 문제로 많이 언급되고 있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소통과 공감 능력을 갖춘 인재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게 됩니다. 지도자가 가져야 할 역량 중 공감능력을 꼽는 사람도 많더군요. 어쩌면 길고 어두운 팬데믹의 시대를 보내면서 사람들은 마스크 속에 얼굴만 감춘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말과 생각도 감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스크로 감춘 얼굴과 마스크가 가려준 마음들 때문에 소통은 점점 사라지고 오해는 커진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공감과 소통이 더욱 중요해진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교단에 선 지 이제 겨우 12년 차. 처음으로 근무해 보는 중학교입니다. 3학년 담임을 맡아 수업을 하면서 딱 한 반 2학년 수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그 무섭다는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이 가득한 정글 같다는 그 교실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긴장한 채 들어선 교실에는 중2병 걸린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고요, 두 눈을 반짝이며 새로 온 국어 선생님을 기다리는 봄꽃을 닮은 아이들만 가득했답니다. 
    그래서 저는 “선생님이 원래 말하는 속도가 빠르고 고등학교에서 주로 3학년 수업만 해 봐서 어렵게 설명할 수도 있어요. 여러분 수준이 낮다는 게 아니고 선생님이 제대로 설명할 줄 모를 수 있다는 얘기에요. 만약에 수업을 듣다가 어려우면 언제든지 선생님한테 질문해요.”라고 부탁할 수 있었지요. 아이들은 “네!”하는 상쾌한 대답으로 저를 웃게 했고 앞으로 1년의 수업이 순조로울 것이라는 좋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매 시간 아이들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저를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제 이야기를 들으며 작은 손으로 열심히 필기를 한답니다. 가끔은 우습지도 않은 제 이야기에 박수를 쳐 가며 웃어 주기도 하 지요. 저는 아이들과 즐겁게 수업하고 있는 행복한 교사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를 이렇게 행복하게 해 준 고마운 아이들에게 서두에 던진 질문의 답이 숨어 있답니다. 
    교사가 되어 담임을 맡으면 반드시 하게 되는 것이 학생들과의 상담입니다. 학년 초에는 반 아이들을 파악하기 위해 상담을 하지만 아직 담임이 낯선 아이들은 깊은 이야기까지는 털어 놓지 않지요. 
    괜찮습니다. 담임에게는 시간이 많거든요. 같이 울고 웃으면서 지내다보면 아이들은 자연스레 마음을 터놓게 되고 중간고사 후 상담 때는 첫 상담보다는 훨씬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답니다.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는 여학생들도 많아요. 그럴 때 아이들이 하는 말은 “선생님한테 털어 놓기만 했는데도 후련해요. 제 이야기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랍니다.
    그래요. 아이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누군가 선입견 없이 들어주기만 하는 것으로도 이미 마음의 짐을 덜게 됩니다. 아이들 뿐인가요? 어른들도 살면서 많은 고민이 있고 어려움이 생기게 마련이죠. 그때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떠올려 볼까요? 여러분은 누구를 떠올리셨나요? 어디에서든 떠드는 걸 좋아하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저는 항상 제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주는 한 친구가 떠오르네요. 서로 성향과 성격이 너무도 달라서 오히려 친해질 수 있었던 친구 덕분에 저는 어린 시절에 비하면 훨씬 고요해졌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도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자, 이제 서두에 내드렸던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해 볼까요? 나라가 강산이에게 마음을 털어놓은 이유를 먼저 생각해 봅시다. 연주회를 앞두고 부담이 커진 나라는 긴장을 풀고 싶은 마음이 컸을 것입니다. 그런데 강산이의 말을 듣고 나서 나라의 불안감은 해소되기 보다 오히려 더 커졌겠지요? 
    그래요, 나라는 위로와 격려를 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상대가 고민을 털어놓을 때 조언이나 충고보다는 잘하고 있다는 따뜻한 격려가 더 필요할 수도 있다는 것을 강산이는 아직 잘 몰랐나봅니다. 상대가 듣고 싶어하는 말만 해 줄 필요는 없지만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아는 것도 인간관계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강산이는 잘 모 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저도 여전히 상대가 듣고 싶어하는 말보다 제가 하고 싶은 말만 먼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두 눈을 반짝이며 저의 이야기를 기다려주는 아이들 앞에 서면서 저는 과연 아이들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고 있는지, 아이들의 눈물을 잘 닦아주고 있는지 반성해야겠습니다. 
    고요히 앉아 상대의 말을 묵묵히 들어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주는 친구가 되고 싶고, 말없이 어깨를 토닥여 주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노력해야겠네요.
    이제 가만히 앉아서 들어보겠습니다. 혹시 봄이 가면서 아쉬워하는 소리가 들릴지도 모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