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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탈춤

2023-01-27

문화 문화놀이터


무형유산의 맛·멋·흥
세계적 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탈춤
'다양성을 담은 오늘날의 문화 창조를 위한 씨앗'

    "한국의 탈춤을 등재하는 것을 채택합니다. 축하합니다." 잠시간 긴장이 무색하리만치 의장의 멘트와 의사봉의 내려침은 매우 차분했다. 그랑프리 시상식에서 보여주는 그 드라마틱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나 심사위원장의 축하 한마디에 한국의 대표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게 '한국의 탈춤 (Talchum, Mask Dance Drama in the Republic of Korea)’은 제17차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에서 대표목록으로 등재되었다. 2022년 11월 30일 모로코 라바트에서였다.  



 
인류무형문화유산의 등재, 그 긴장된 순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의 등재는 먼저 평가위원회에서 치열한 검증을 거치며 나온 의견을 가지고 정부간위원회에서 등재 여부를 결정한다. 평가위원회의 결과가 준용되지만, 반드시 그렇지 않은 경우도 존재한다. ‘한국의 탈춤’은 이미 한달 전 ‘등재권고’ 의견을 받았기에 등재의 결과를 낙관하고 있었지만 삶에선 언제나 변수의 확률이 존재하기에 18시간 떨어진 모로코 라바트까지 찾아온 한국인 관계자들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날 첫 심사 종목은 쿠바의 럼주로 오랫동안 치열한 반대와 찬성의 의견이 엇갈리다가 마침내 등재가 결정되었다. 다음은 북한의 ‘평양랭면 풍습’으로 아무런 이견 없이 등재 결정이 났고, ‘한국의 탈춤’ 순서가 다가왔다. 다행히 우리의 탈춤 또한 별다른 반대 의견 없이 빠르게 등재결정을 받게 된다. 그렇게 ‘한국의 탈춤’은 한국 22번째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이 되었다.
    ‘탈춤’이란 용어는 다소 불완전한 명칭이다. 한국 탈춤의 경우 춤보다는 재담이라 부르는 연극적 대사가 강조되는 것이 세계의 탈춤과 차별화되는 점이다. 게다가 ‘탈춤’은 한국의 해서(황해도) 지역의 것을 지칭하며, 그 외의 지역에서는 산대놀이, 야류, 오광대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따라서 이 모두를 감안해 보면 ‘가면극’, ‘탈놀이(음)’가 더 적확한 표현이 된다. 사실 이 문제는 ‘한국의 탈춤’의 등재신청서 작성때부터 상당히 고민했던 문제였다. 결과적으로 ‘탈춤(maskdance)’이라는 용어가 선택된 이유는 그 단어가 갖는 가시성 때문이다. 즉, 국내의 일반인과 외국인들에게 ‘가면극’, ‘탈놀음’보다는 탈춤이 더욱 직관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左) 모로코 라바트에서 열린 제17차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
(右) 국가무형문화재 양주별산대놀이(사진. 문화재청)

지역마다의 색깔로 전승되는 탈춤의 문화다양성
    ‘탈춤’은 한국인에게는 매우 익숙한 문화이다. 실제 추어보진 않았더라도 교과서를 통해 양반과 타락한 중[僧]에 대한 야유와, 처첩 갈등을 통한 가부장제의 모순을 풍자한다는 정도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 이렇게 대국민이 익히 아는 정도, 이른바 가시성은 곧 탈춤이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무형유산으로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추천된 힘이 되었다. 오늘날 이러한 가시성을 확보하게 된 것에는 1970, 80년대 대학가 탈춤 부흥 운동이 영향을 주었다.
    대학마다, 심지어 학과마다 농악과 탈춤 동아리와 소학회가 만들어진다. 학기 중에는 선배들에게 탈춤을 배우다가도, 방학이 되면 현장학습을 떠났고, 실제 탈춤을 연희하는 공간과 사람들에게 직접 전수받았다. 이때 탈춤을 배웠던 이들이 어느덧 탈춤 연구자가 되고, 문화판의 기획자가 되면서 다양한 탈춤 문화가 확산하게 된다.
    한국에는 지역마다 다양한 탈춤이 존재한다.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이 13개이고, 시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이 5개 도합 18개 종목이 있다. 이처럼 지역별로 자신들의 색깔을 가지고 전승되는 탈춤은 문화다양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물론 이들 종목은 대부분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시기 전승이 일시적으로 단절된다. 그리고 이후 다양한 복원의 노력을 통해 다시 전승하게 된다. 물론 단절 이전과 이후가 온전히 동일한 것인가가 늘 쟁점이 되곤 한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문화재 지정 여부가 첨예하게 대립되었으며, 합리적 설득이 된 종목들이 오늘날 문화재로 지정된 것이다. 지금도 여러 지역에서 복원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경우가 여럿 있다. 부산 경남 야류와 오광대의 시원이라 불리는 ‘합천 밤마리 오광대’, ‘의령 신반 대광대패의 탈놀이’ 등이 그러한 예이다.
    한편 과거에 했던 탈춤, 이른바 전형을 온전히 전승하는 노력 외에 이 시대 탈춤을 만들고자 한 다양한 예들이 존재한다. 창작탈춤과 마당극, 전통연희 공연에서 탈춤은 새로운 옷을 입고 있다. 이렇듯 탈춤은 그 자체로 전승해야 할 무형유산이면서, 오늘날의 문화 창조를 위한 씨앗 역할을 하는셈이다. 이것이 바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 지향하는 ‘문화다양성과 창의성에 기여’인 것이다. 



 
한국 무형유산의 지속가능한 전승과 발전을 위해
    등재 결정의 순간은 짧고 무난했다. 그러나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은 16년의 시간이 존재했다. 그 시간이 오롯하게 퇴적층처럼 갈무리된 것이 바로 안동에서 2006년 창립된 ‘세계탈 문화예술연맹(IMACO)’이다. 바로 이번 등재에서 실질적인 기여를 한 곳이다. IMACO에서는 그 시간 동안 국제회의를 통해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탈춤 단체, 도시들과 네트워크를 쌓아 왔고, 학술대회와 아카이빙을 통해 국내 탈춤 연구자와 협업해 왔다. 한국 및 세계의 탈도 수집하였고 가장 힘겨웠던 전국 탈춤보존회들의 공동참여 동의서를 얻어냈다. 마지막으로 유네스코 등재신청서에 대한 작성 경험이 많은 탈춤의 전문가를 통해 작성토록 지원하였다. 그 결과 유네스코 평가위원회에서는 ‘한국의 탈춤’을 등재 권고하면서 그 신청서를 작성의 모범사례라 적시하였다.
    이렇듯 유네스코 등재가 되기 위해서는 현장 전승자의 힘만으로는 쉽지 않으며, 더욱이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는 공동등재의 경우에는 그 구심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이것은 비단 유네스코 등재뿐 아니라 한국 무형유산의 지속가능한 전승과 발전에도 적용될 수 있는 점이다. 현장과 학계, 지역 및 국가 정부 이른바 여러주체의 협업이 필요하며, 각 주체들을 매개하는 추진기구가 필요하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에 대한 경쟁이 치열하다. 그러나 그 치열함은 등재의 순간까지만 유효함을 그간 등재에 성공한 종목들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지속가능함’을 위해 등재를 한 것인데, 그 지속가능성에 대한 노력 없이 등재로 마침표가 끝나고 만다. 등재신청서에 썼던 등재 이후 실천 계획들을 지키지 않아 등재 무효, 이른바 ‘목록 삭제’가 되는 경우가 없다 보니 긴장감이 없다.
    따라서 우리는 지속가능함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부디 ‘한국의 탈춤’은 신청서 작성만 모범사례에 머물지 않고, 그 이후 실천에 있어서도 모범사례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중심인 IMACO의 역할도 물론 중요하지만, 18개 종목 해당 지자체들의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된다. 때론 경쟁하고, 때론 협력하면서 탈춤의 가치 확산에 힘이 되어주길 기대해 본다.
    탈춤은 전승해야 할 무형유산이면서, 오늘날의 문화 창조를 위한 씨앗 역할을 한다. 이것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 지향하는 ‘문화다양성과 창의성에 기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