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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기록당 ‘최연희’

2023-01-26

문화 문화놀이터


다음 세대 기록인
정말기록당 ‘최연희’
'사라져가는 것만이 기록할 가치가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사는 매 순간이 가치 있는 기록이 될 수 있어요'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마을 기록을 하고 있는 최연희라고 합니다.
마을 기록을 처음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흔히 하시는 오해 중의 하나가 저희가 처음부터 ‘기록 활동’을 목적으로 모인 단체라는 것인데, 저희는 마을 활동을 위해서 먼저 만난 것이지 기록을 중점에 두고 만난 사람들은 아니에요. 2012년에 서울 곳곳에서 마을 만들기 활동을 지원하는 공모사업이 처음 나왔고, 교육 프로그램이나 문화 프로그램 혹은 지역 축제 등 다양한 활동 중에 우리는 어떤 것을 할까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죠. 





    제가 예전에는 이런 마을 활동을 지원하는 곳에서 일했기 때문에 익숙한 분야였거든요. 하지만 정작 제 마을에서는 활동을 못 했던 터라 당시 동네를 잘 아는 후배가 마을 분들을 소개해 주면서 정릉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어요. 그때는 잡지사를 한창 다니고 있을 시기였기 때문에 마을 분들의 이야기를 잡지에 담아보면 어떨까 생각이 들어서 ‘우리 동네 능말’을 만들게 되었죠. 이렇게 처음 마을 기록을 해보니 주민들은 물론 활동하시는 분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았고 그다음 해에도 이어지게 되었어요. 재미있으니까 계속할 수 있었던 건데, 만약 마을 활동이 아닌 처음부터 기록물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면 저희도 그렇게 오래 가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마을 활동으로 시작된 기록 활동이 오래도록 이어지는데 중요했던 점이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첫 마을 기록물인 ‘우리 동네 능말’이 만들어진 지 벌써 10년 가까이인데, 여기에 참여하신 선생님들이 아직도 같이 활동하고 계신가요?

    반 정도는 바뀌었어요. 이 활동은 사실 급여를 받는 일도 아니고 어떤 소명 의식으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에요. 마을 활동은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수준에서 끌고 가는 것이 아주 중요해요. 그래서 본업이 바쁘면 잠시 빠졌다가 합류하기도 하고, 참여도를 낮추면서 지속적으로 그 끈을 이어가기도 하세요. 저 역시도 제 직업이 있었기 때문에 이 활동에 전념할 수는 없었어요. 누구나 하고 싶을 때에 본인이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일을 분배하는 것이 매우 주효했는데, 예를 들어 인터뷰나 글을 쓰기 힘들어하시는 분들께는 가족에게 편지를 써오라는 식으로 변형해서 참여하실 수 있도록 유도했어요. 즉, 아주 작은 꼭지라도 본인이 이 활동의 일원이라고 느끼실 수 있도록 역할을 드렸죠. 어느 한 분이라도 소외되지 않도록 중간역할을 한 거예요.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또 중요한 지점 중의 하나는 마을 분들이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천천히 진행했다는 거예요. 인터뷰, 사진, 영상촬영 모두 전문가가 아닌 마을 분들이 직접 하실 수 있도록 코치를 해드렸어요. 조금 느리더라도 마을 기록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적인 부분보다 사람과 이야기를 찾는 것이거든요. 솔직히 정리하는 입장에서는 많이 힘들었어요. 그래서 이분들을 성장시키는 것이 먼저일까 고민했던 지점이기도 했죠. 하지만 이분들이 역량을 키워서 a부터 z까지 다 한다고 해도 저는 그게 오래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책임지는 구조가 아닌, 서툴고 느리더라도 주민들이 다 같이 역할을 분배하면서 천천히 가는 것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해요. 마을 기록은 계속 쌓아가는 과정이에요. 정답이나 결론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죠. 
선생님 개인적으로는 마을 기록 활동이 어떤 의미가 있으셨나요?
    세속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마을 기록으로 이곳저곳에서 불러주셔서 밥벌이하고 있으니 생계의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마을 기록을 하지 않았다면 제가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을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요. 40대의 진로가 될 만큼 마을 기록은 저에게 매력적인 장르이고, 앞으로도 풀어야 할 많은 미션을 주는 영역이기도 해요. 




 
마지막으로 다음세대 기록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모든 세대는 현재성을 가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사실 ‘다음세대’라는 것은 설정하기 어려운 개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당장 지금으로부터 몇십 년 후를 다음세대로 지칭한다는 것도 무의미하고요. 그래서 이런 물리적인 개념보다는 다음세대의 의미를 조금 폭넓게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 생애에 걸쳐 스스로에 대한 기록이 왜 중요한지를 알고, 기록의 주체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바로 ‘다음세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이야말로 일상에서 남기는 기록의 가치와 중요성을 깨닫고 실천하면서 시간이 지나도 그 기록을 공유하며 확장해나가실 테니까요. 그렇기에 현재를 중심으로 과거의 나를 돌아보고 의미를 찾는 활동은 결국에는 본인의 가치를 깨닫는 일과 다르지 않죠. 아주 거창하게는 아니더라도 내 주변에 대한 관심과 기억들을 일기와 블로그 같은 곳에 남기시는 분들은 기록의 중요성을 알고 계시는 분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러한 일들이 일상에서 더 많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사라져가는 것만이 기록할 가치가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사는 현재가 매 순간 우리에게는 가치 있는 기록이 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