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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다는 건 다 그런 게 아니겠니?

2021-07-30

문화 문화놀이터


어제와 오늘
쉰다는 건 다 그런 게 아니겠니?
'잘 자는 방법에 관해'

    여름철 더위는 너무나 뜨거워 '불더위', '찜통더위', '가마솥더위' 라고 달리 표현하기도 한다. 무더운 한여름이 특히나 힘든 건, 잠을 자기 어렵기 때문이다. 요즘은 에어컨이 보급되어 그나마 더위를 버티지만, 과거 선조들은 어떻게 더운 밤을 이겨내고 잠을 이루었는지 궁금하다. 
차가운 죽부인과 함께 잠을 청하다
    한여름 밤 선비를 독차지하는 죽부인은 누워서 안고 자기에 알맞게 원통형으로 만들었고, 속이 비어 있어 공기가 잘 통하고, 대나무의 표면에서 느끼는 차가운 감촉 등의 특징을 살려 만든 것이다. 당나라 때는 무릎에 끼고 자는 대라는 뜻으로 ‘죽협슬(竹夾膝)’이라 불렀다가 송나라에 와서는 죽부인(竹夫人), 죽희(竹姬, 대나무첩), 죽노(竹奴, 대나무종)등으로도 불렀다. 죽부인의 부인(夫人)은 ‘남의 아내를 높여 이르는 말’로, 결혼한 여자를 가리키는 부인(婦人)의 ‘부(婦)’자를 사용하지 않았다.



    대나무는 본래 대장부에 비유하였고(竹本丈夫比)
    분명히 아녀자와 가깝지 않은 것인데(亮非兒女隣)
    어찌하여 침구로 만들어져서(胡爲作寢具)
    억지로 부인이라 이름지었나(强名曰夫人)
    내 어깨와 다리를 괴어 편안하게 해 주고( ?我肩股穩)
    이불 속으로 들어와 친하게 되었네(入我衾?親)
    비록 다소곳이 남편 시중은 못 들지만(雖無擧案眉)
    다행히 사랑을 독차지 하는 몸은 되었네(幸作專房身)
    다리가 없으니 남에게 도망갈 염려도 없고(無脚奔相如)
    말을 못하니 술 잘 먹는 나를 충고도 못한다(無言諫伯倫)
    고요한 것이 나에게는 가장 편한 것(靜然最宜我)
    서시같이 아름다움을 흉내 낼 필요가 있을까?(何必西施嚬)
    - 이규보(李奎報), 「죽부인(竹夫人)」, 『동국이상국전집』

    고려시대 문신이며, 명문장가인 이규보의 시(詩) 「죽부인」이다. 죽부인의 기능과 아내의 역할을 재미있게 비교하며 노래한 서정적 시이다. 조선시대 문인들도 죽부인의 형태와 기능에 관해 언급했다. 1798년 『재물보』를 편찬한 이만영(李晩永)은 “죽부인은 대나무로 만들었고 긴 베개인 장침(長枕)과 같아서 여름에 잠잘 때 들이면 시원하다”라고 하였고, 실학자 서유구도 『임원경제지』에서 “모양은 연통 같은데 안은 비어 있고 밖은 둥글고 매끄럽다. 여름에 이것을 이불 안에 넣고 자면 팔과 무릎을 쉬게 할 수 있다. 그런고로 죽부인 또는 죽궤(竹?)라고 한다”라고 말했다.
    조선 말기 문신인 이유원도 『임하필기』에서 “대오리를 엮어서 통을 만들되 속은 비우고 겉은 구멍을 낸다. 더울 때 이것을 침대나 앉을 자리에 두면 손과 발을 쉬게 할 수 있으니 가벼움과 서늘함을 취한 것이다”라고 했다. 한편 아버지가 사용한 죽부인은 아들이 쓰지 않았으며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불에 태웠다. 죽부인은 오늘날에도 더러 사용되고 있어 낯설지 않은 피서도구이다. 
 
01. 여름용 남성 상의 등등거리, 가늘게 쪼갠 등나무 줄기를 엮어 조끼 모양으로 만들었다.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02. 대오리를 길고 둥글게 얼기설기 엮어 만든 원통 형태의 죽부인(사진. 국립민속박물관)
03. 등(藤)나무 줄기를 촘촘하게 엮어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는 원통 형태로 만든 토시((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시원한 복식으로 더위 몰아내기
    삼베와 모시는 통기성이 좋아서 여름철 옷을 만드는 데 적격이다. 삼베는 대마의 껍질을 벗겨 가늘게 찢어 실로 만들어서 짠 직물로 오랜 역사와 함께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삼베 생산지로 명성을 날렸던 지역은 함경도이며 그곳의 삼베를 북포(北布)라고 했다. 『임원경제지』를 쓴 서유구는 함경도 삼베가 워낙 고와서 한 필이 대나무 통에 들어간다고 하여 ‘통포(筒布)’라고 했다. 그 밖에 영남의 영포(嶺布), 강원도의 강포(江布)도 유명했다. 삼베는 옷은 물론이고 홑이불처럼 무더운 여름철을 나기 위한 직물로 사용되었으나 1976년에 대마관리법이 시행되면서 오늘날에는 대부분 수의를 만드는 재료로 쓰인다.
    모시는 자연에서 자라는 식물을 정성어린 손질로 끈기 있게 다듬어 완성시킨 천연 옷감이며, 땀을 잘 흡수하면서도 청량감을 주는 직물이다. 얼음같이 차가운 촉감과 투명함, 은은한 색상, 사각거리는 청각 효과가 주는 청아함은 전통 여름 한복의 품격 있는 자태를 가장 잘 보여주는 특성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나 모시는 매우 잘 구겨지기 때문에, 얼마나 주름 없이 맵시 있게 입어 내느냐에 따라 품위 있고 바른 몸가짐을 가진 사람인지 가늠할 수 있게 만드는 짓궂은 옷감이기도 했다.
    옷과 살 사이에 특별한 복식을 착용하여 더위를 이겨낸 것은 ‘등등거리’와 ‘토시’이다. 등나무 줄기를 가늘게 쪼개서 엮어 만든 조끼인 ‘등(藤)등거리’는 여름철 윗옷 안에 받쳐 입어, 옷과 피부 사이의 공간으로 바람이 통하게 해 옷에 땀이 배지 않는다. 여름용 토시도 등나무나 대나무를 엮어 통풍이 잘되도록 원통형으로 만들어 팔에 끼웠다. 
 
01. 국가무형문화재 염장 보유자 조대용 장인의 발 작품(사진. 문화재청)
02. 장방형으로 왕골을 촘촘히 짜서 엮은 자리(사진. 국립민속박물관)
03. 삼베는 통기성이 좋아 여름철 옷을 만드는 직물이었다.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04. 합죽선, 선면에 위당 정인보 선생이 작사한 3·1절가, 광복절 노래 가사가 묵서됨(국밉민속박물관)
 
바람을 일으키는 부채의 오랜 생명력
    여름철 부채 선물만큼 좋은 것은 없다. ‘하선동력(夏扇冬曆)’이란 말도 그것을 나타낸 것이고, 고려시대부터 고종 31년(1894)까지 단오가 되면 영호남 지역의 부채를 임금에게 진상하였다. 부채는 나눔의 선물이었다. 임금은 신하들에게 부채를 하사하고 신하들은 다시 일가친척과 친지에게 나누어주었다.
    공조와 전라도, 경상도 두 감영 그리고 통제영에서는 단오가 되면 부채를 만들어 진상한다. 그러면 조정에서는 이를 시종관 이상 삼영에까지 모두 예에 따라 차이가 있게 나누어 준다. 그러면 부채를 얻은 사람은 다시 그것을 자기의 친척, 친구, 묘지기, 소작인에게 나누어 준다. 그러므로 속담에 시골에서 생색내는 것은 여름에는 부채요, 겨울에는 달력이라 했다.
    위의 내용은 1819년 김매순(金邁淳)의 『열양세시기』에 등장하는 내용이고, 『동국세시기』나 『경도잡지』에도 단오 부채 선물 풍습이 보편적이었음을 알리고 있다. 그리고 선물 받은 부채에 그림을 넣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동국세시기』의 기록을 보면 19세기에는 금강산 그림이 유행한 것으로 보인다. 부채는 박물관이나 관공서에서 단오를 기념하여 시민들에게 선물하는 여름나기 용품으로 여전히 널리 사용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젊은이를 중심으로 ‘손풍기’로 불리는 휴대용 선풍기를 들고 다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지만, 자연친화적인 부채와 비교할 수는 없다. 
주생활 용품으로 더위 이겨내기
    선조들의 여름나기 노력은 평상, 자리, 발 같은 주생활 용품에서도 찾을 수 있다. 침상 크기에 낮은 다리를 한 평상은 바닥이 듬성듬성 짜여 있어 바람이 잘 통해 여름에 사용하기에 제격이다. 이곳에서 잠을 청하다 보면 더운 여름도 어느덧 잊어버린다. 여름철 온돌이나 마루 위에 깐 ‘자리’는 몸을 시원하게 만들어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다. 재료에 따라 자리는 짚으로 만든 초석(草席), 갈대로 만든 노점, 부들이나 왕골로 만든 백문석(白紋席)과 화문석(花紋席)이 있다.
    여름철 뜨거운 햇볕을 가리거나 문을 열어 시원한 바람을 통하게 할 때 타인의 시선을 막고 사생활을 보호받기 위해서 창문 앞에 대나무나 갈대로 만든 발을 늘어뜨렸다. 이는 오늘날에도 설치가 용이하고 수납하기에도 간편하여 많이 이용되고 있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더위를 이겨내고, 잘 쉬기 위해 부단히 아이디어를 냈다. 올해 한여름 무더위,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빌려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