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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제비

2021-06-09

문화 문화놀이터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제비
'글. 이정연'

    매주 다니러 가는 시골 어머님 댁 골목에서 나는 잠시 얼어붙었다. “이제 더는 짓지 마래이! 미련한 것 같으니라고 한번 말하면 알아들어야지.” 막대기로 대문을 탕탕 두드리며 고함을 치시는 어머님 목소리에 깜짝 놀라서였다. 어머님이 고약한 치매에 걸리신 걸까? 너무 놀라 선뜻 대문 안으로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주차하러 간 남편을 기다렸다.
    “왜 안 들어가?”
    “아무래도 어머님이 치매가 오신 거 같아 혼자 고함치며 대문을 마구 두들기시는데?” 남편도 설마 하는 표정으로 조심스레 대문을 밀고 들어갔다. 밖에서 들은 그대로 어머님은 긴 대나무 막대기를 들고 화난 표정으로 서 계셨다. 어머님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현관 천장 아래 형광등을 달아 놓은 곳에 제비가 집을 짓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사람이 드나드는 현관 바로 앞에 제비가 집을 짓기 시작해서 헐어 버려도 자꾸 흙과 지푸라기를 물어와 집을 짓는다는 거였다. 하고많은 공간을 두고 하필 사람이 다니는 현관 정     중앙에 똥을 싸며 자리를 잡아서 허문다고 하셨다. 쉴 때는 형광등에 앉아 있는데 불을 켜면 뜨거워서 발을 동동거리면서도 도무지 옮길 기미가 없다는 거였다. 



    “어머니 내버려 두세요. 그러다 계단에 넘어져요. 여름 지나면 어련히 날아갈 거고 똥 싸는 거야 우리가 알고 있으니 좀 피해 가면 되겠지요.”
    잠자코 듣고 있던 남편이, 지금은 두 마리지만 이제 곧 알을 낳고 부화할 거고, 그럼 대여섯 마리가 현관 앞에 똥을 싸댈 건데 비위생적이어서 안 된다고 했다. 더구나 지푸라기가 섞인 제비집을 형광등에 붙여지어 언제 불이 날지도 모르는데 그대로 두면 안 될 것 같다고 어머님을 거들었다.
    다음 주에 가보니 어머님은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막대기를 들고 서 계시고 제비 두 마리는 흙 묻힌 지푸라기를 물고 전신주에서 어머니를 내려다보고 있다. 말도 못 하고 생각도 없는 미물과     그러고 계시니 딱 하다. 할 수 없이 남편에게 불을 켜도 형광등은 뜨겁지도 않은데 그만한 온도로 불날 것 같다고 해서 공연히 어머님만 힘들게 한다고 짜증을 냈다. 실제로야 어떻든 한 번 내뱉은 말이라 그런지 남편은 화재는 백번 조심해도 나쁠 것이 없다고 언성을 높여 쐐기를 박았다. 아버님 돌아가시고 온 마음을 의지하고 있는 당신의 장남이 화재 걱정을 하니 어머님은 더욱 서슬이 퍼레 지셨다.  점심 식사 후에는 아예 막대기를 들고 현관 앞에 자리를 깔고 앉으셨다. 제비와 어머니의 전쟁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벌써 일주일째 그러고 있으니 나는 생 골치가 다 아팠다. 무엇이 그토록 처절하게 집짓기에 매달리게 하는 것일까. 봄 하늘 무수히 날던 흔한 제비에 대해 나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 눈치도 코치도 없는 작은 제비, 그동안 얼마나 치열하게 집을 지었으면 앙가슴이 온통 흙투성이다. 지으면 허물고 지으면 또 허물고 이게 무슨 영문인가 모른 체 오직 본능으로 짓고 또 짓는다. 다른 제비들은 벌써 집을 다 짓고 사랑하고 알을 낳아 품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아직 집짓기는 시작도 못 했다. 또 흙 묻힌 지푸라기를 물고 멀찌감치 전신주에 앉아 고개를 갸웃갸웃 불안한 눈빛으로 애원하는 것 같다. 근심스레 재재거리는 제비도 애처롭지만,  천정을 보고 높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제비집을 허물다가 어머님이 낙상하실까 그게 더 걱정스러웠다.
    논리적 싸움에 논리적으로 맞서면 승산이 어렵다. 나는 조금 전 남편에게 했던 전투적인 모습을 지우고 세상 순한 아내처럼 말했다. “당신이 어떻게 좀 해 봐요! 당신 말이라면 어머님이 잘 듣잖아요. 나는 저 제비가 그 연인들 같아. 왜 전에 만삭인 몸으로 저녁 무렵에 와서 이 동네는 집이 너무 비싸다고 우리가 갈 수 있는 집은 없네요. 하며 눈물을 글썽이며 나갔던 어린 부부.”



    그 일을 남편도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열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어린 연인들이 들어 왔는데 아직 결혼식도 못 올린 것 같았다. 복숭아꽃같이 앳된 임산부, 곧 태어날 아기를 위해서도 집이 필요한데 몇 군데 들른 부동산에서 가진 예산으로는 턱도 없는 전세가를 듣고 잔뜩 실망한 채 들어왔다. “여기도 더 싼 집은 없지요?” 묻고는 고개를 끄덕이는 내게 차 한 잔만 마셔도 되느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첫 출산의 두려움에 긴장한 어린 임산부와 한없이 처진 어깨의 준비되지 않은 아빠, 그 인생의 무게가 고스란히 내 가슴에 얹혔다. 산을 일으키듯 힘겹게 일어서는 연인의 어깨를 안고  노을 속을 걸어가는 청년의 뒷모습이 마치 우리 아이들 같았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남편이
    “엄마 제비집 그만 그대로 두이소  부순다고 안 지을 거 같지 않아요”
    재들은 눈치도 없고 코치도 없고 염치도 모르는 것 같아요.” 지친 어머님도
    “그럴까? 나도 종일 쳐다보고 허물라니 머리도 아프고 어지럽다.” 하셨다.
    나는 마치 그때의 젊은 연인들에게 우리 작은방이라도 내준 것처럼 마음이 흐뭇했다. 어머니는 막대기를 창고 앞에 세워 놓고 쌔근쌔근 낮잠을 주무시고 제비는 이때다 하고 종횡무진 흙을 물어 나른다.
    주말에 가보니 제비가 집을 다 지었다. 현관 앞에는 신문지가 깔려 있고 벌써 알 수 없는 그림을 잔뜩 그려 놓았다. 알을 품고 있는지 암컷은 집 안에 있고 수컷은 형광등 위에 앉아있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허물지 않으니 하루 만에 집을 다 짓더라고 하셨다. 평화가 찾아온 시골 마당에 채송화 어린 싹이 무수히 돋아나고 미세먼지 걷힌 하늘에 흰 구름이 예쁘다.
    천장에 바짝 붙여 집을 지어 제비가 알을 몇 개나 낳았는지 모르겠다. 이제 곧 부화하고 시끄럽게 재재거릴 것이다.  금은보화가 열리는 박씨 같은 건 안 물어 와도 괜찮다. 부디 그 어린 것들이 눈치코치 없는 제 부모를 닮지 않았으면 좋겠다. 행여 어머니 머리에 실수해서 당신을 노엽게 하지 않을 염치만이라도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