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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벗 문방사우의 역사를 기록하다

2021-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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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벗 문방사우의 역사를 기록하다
'호산 붓 박물관 김진태 관장'

    누군가의 작은 노력은 사라져가는 것을 지키는 큰 힘이 되기도 한다. 쓰임이 줄어들고 대체품도 많아지면서 사장되어가던 우리 붓의 명맥을 잇고 그 가치를 알리며 전통기법으로 붓을 제작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우리 선대 학자들에게는 꼭 갖추어야 할 필수품이자 자신만의 글과 그림에 사용하는 애장품이기도 했던 붓. 붓에 매료되어 평생 붓과 더불어 살아온 호산 붓 박물관 김진태 관장은 문방사우 중 하나인 우리나라 전통 붓의 역사를 써가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고군분투하며 걸어온 필장(筆匠)의 길
    삶을 살다 보면 운명처럼 다가오는 것들이 있다. 그 귀한 인연을 놓치지 않고 자기의 삶을 일구는 사람은 혜안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서예에 관심이 많았던 십대 시절, 훌륭한 서예가의 가르침을 얻고자 찾았던 인사동의 작은 필방에서 본 붓에 매료되어 붓과 함께하는 길로 들어선 이후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오로지 붓만 생각하면 살았다는 호산 붓 박물관 김진태 관장.



    그저 글씨 쓰고 붓을 가까이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운이 좋았던지 그는 당시 유명한 필장이었던 신홍택 선생과 강흥복 선생께 사사할 수 있는 기회를 잡고 본격적으로 제필법을 배웠다. 다양한 기술을 구사하는 필장이 많지도 않은 시절이었지만, 김진태 관장은 세필로 유명한 신홍택 선생과 대필이 전문이었던 강흥복 선생에게 동시에 사사함으로써 폭넓은 제필법을 익힐 수 있었다.
    “부지런히 배우고 익히는 것이 그저 즐거웠습니다. 그렇게해서 일정 수준에 이르렀을 때 중국과 일본의 붓은 어떤 차이가 있으며 그들은 어떻게 붓을 만들고 있는지 등이 궁금해 찾아가 배웠습니다. 각 나라의 붓 공장에서 직접 근무하면서 전 과정을 익혔죠. 한국에 돌아와서도 관련 일을 하다가 필기구로 유명한 회사에 입사해 한국의 붓을 제작해 일본으로 수출하는 일도 하는 등 붓과 관련해 다양한 경험을 했습니다. 60년 가까운 시간이 붓과 함께 훌쩍 흘렀죠.”
    하지만 김진태 관장이 걸어온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생각보다 우리나라 붓에 대한 사료가 많지 않고 정확한 제작기법 등이 잘 전수되지 않았으며, 전통 붓 재료들도 많이 사라진 상태라 전통 기법에 따라 품질 좋은 붓을 만드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이전과는 달리 붓을 사용하는 일이 많지 않아 생계를 책임진 가장으로서 경제적으로 힘든 시간도 감내해야 했다. 여러 가지 악재에도 불구하고 김진태 관장의 붓 사랑은 꺾이지 않았다.
    “저는 제가 하는 일이 천직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어려움을 다 감수하고 흔들림없이 임할 수 있어야 천직일 텐데 붓을 만든 지 30년이 지나니 비로소 천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편안한 순간이 붓을 만들 때인데 좋은 재료로 붓을 만들고 연구하면서 사는 삶이 행복합니다.” 필장의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천직이라는 굳건한 믿음으로 집념을 가지고 일한 끝에 김진태 관장은 오늘에 이르렀다.
 
(左)붓의 품질을 검증하며 자연스럽게 수준급의 필체를  터득하게 된 김진태 관장     (右) 훌륭한 붓을 만드는 재료인 품질이 우수한 대나무
 
문방사우의 꽃, 붓을 위한 공간

    족제비 털, 노루 털, 소의 귀 털, 청솔모 털 등 국내에서는 야생동물 보호종이나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수급조차 쉽지 않아 어렵게 수입한 재료로 만든 붓만 해도 수를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많다. 하루도 쉬지 않고 붓 만드는 일에 몰두한 평생의 기록은 호산 붓 박물관을 탄생시켰다. 김진태 관장이 평생 만들어온 붓 중에서도 수작들만 모아놓은 호산 붓 박물관. 붓 외에도 여러 종류의 종이와 먹, 벼루 등이 박물관에 가득한 것이 인상적이다. 붓은 다른 문방사우와 함께 있어야 비로소 그 가치가 더해지고 완전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 김진태 관장의 설명이다.
    “필장은 다양한 자질을 갖추어야 합니다. 더 좋은 붓을 만들기 위해서 문방사우에 대해 모두 이해해야 하고, 글씨와 그림에도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어 만든 붓을 직접 사용하면서 품질을 검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선비들은 저마다 자기 붓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을 아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자기가 가진 붓으로 글씨도 쓰고 서화도 했죠. 본인의 운필법이나 그림의 종류에 따라 여러 붓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시·서·화에 두루 능통해야 선비의 자질을 갖추었다고 말했으니 그들에게 붓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었죠. 선비들의 수준에 닿지는 못하지만 흉내낼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을 갖추어야 필장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 저도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左)붓 만드는 재료가 가득한 호산 붓 박물관     (右)우리나라의 산과 강, 꽃 이름으로 붓명을 붙여 만드는 다양한 분


    단순히 붓을 제작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다재다능함과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긴 세월을 한결같이 스스로를 갈고 닦는 일에 소홀하지 않았던 김진태 관장. 덕분에 김진태 관장은 전승공예대전에서 여러 차례 수상하는 등 화려한 수상 이력도 자랑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 붓을 더 많이 알리고자 전시도 진행하고 연구활동과 서적 집필에도 열심이다. 이 모든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 바로 호산 붓 박물관인데 그에게 박물관은 작업실이자 연구실이고 붓을 알리는 전시실임과 동시에 자부심의 표현이다.


우리 붓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지난한 여정
    선조들에게 학문을 위해 꼭 필요한 도구였던 붓이 김진태 관장에게는 그 자체로 학문의 대상이 되었다. 이토록 고집스럽게 붓과 관련된 일을 이어가는 이유는 상대적으로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움 때문이다. 붓을 그저 도구로만 여기지 않고 연구하고 기록해 문화유산으로 남겨야 우리 붓의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있다고 강조하는 김진태 관장은 그것이 앞으로 해나가야 하는 중요한 숙제라고 생각한다.
    우선 붓의 용도부터 확실히 정리하고 있다. 서예, 서화, 민화, 한국화, 문인화 등 문방사우를 사용하는 각 분야마다 걸 맞은 붓도 다 달라진다. 사용자에 따라 손에 알맞은 붓 또한 달라지기 마련이다. 이에 따라 용도와 사용감 등을 세분화해 400여 종의 붓을 제작하는 것이 김진태 관장의 목표다. 400여 종의 붓이 완성된다면 이는 세계적으로도 유일무이한 기록이 되기에 한국 붓의 위상과 가치가 달라지는 길이 될 수 있다. 그 험난한 길을 김진태 관장은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붓과 일생을 함께한 김진태 관장에게 붓은 곧 삶이다

    이와 더불어 한국 붓이라는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 ‘붓의 한글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대개 붓에는 그 이름이나 제작연도 등이 한자로 적혀 있는데 이를 한글로 바꾸고 붓의 이름도 우리나라의 산과 강, 꽃의 이름으로 명명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인이 만든 한국 붓이라는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자 한다. 우리 것의 소중함을 전파하기 위해 이는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라는 것이 김진태 관장의 생각이다.
    공부하는 선비들은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는 중요한 수단이 붓이었다고 이야기하는 김진태 관장은 가치 있는 것에 평생 올곧은 행보를 이어갔던 선비정신을 본받아 늘 붓과 함께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김진태 관장에게 붓은 삶이며, 학문이고 역사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