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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비구비 흐르는 시간의 흔적을 좇다

2021-02-26

문화 문화놀이터


타박타박 걷는 문화유산 오솔길
구비구비 흐르는 시간의 흔적을 좇다
'고즈넉한 겨울 영월'

    청정 강원이 숨겨둔 비경과 오랜 역사를 이어온 문화유산을 품고 있는 고장 영월은 소란스럽지 않게 가객을 맞이한다. 덕분에 고요하고 호젓한 분위기에  듬뿍 젖어 들어 차분하게 문화유산과 교감하는 시간을 가지기에 더없이 좋은 여행지이기도 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진면목을 볼 수 있어 삶의 쉼표를 찍고 조용히 그 매력에 취하고 싶은 고장, 영월로 떠난 기행.


비운에 스러져간 단종을 향한 위로, 청령포와 장릉
    영월은 단종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단종과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다. 조선 역사상 가장 비운의 왕으로 손꼽히는 단종은 12세라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지만 숙부인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란으로 그에게 왕위를 선위하고 노산군으로 강등된 채 영월 청령포로 유배를 왔다. 권력의 희생양이었던 어린 단종이 유배당해 육지의 섬 같은 곳에서 위리안치와 다름 아닌 쓸쓸한 삶을 살았던 청령포(명승 제50호). 강이 굽이쳐 흐르고, 수백 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아름드리 소나무와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기암절벽 등 수려하기 그지없는 풍경을 가진 청령포지만 어린 나이에 유배되어 위태로운 삶을 이어나가야 하는 단종에게는 그저 창살없는 감옥같은 공간에 불과했을 것이다.



    어린 단종이 한양을 그리워하며 시름을 달랬다는 노산대와 망향탑이 그대로 남아있고, 그가 올라 시간을 보냈기에 서글픈 단종의 삶을 고스란히 지켜봤다고 해서 관음송(觀音松, 천연기념물 제349호)이라 이름 붙은 소나무가 위엄 있게 서 있어 여행객의 시선을 멈추게 한다. 서글픈 단종을 위로라도 하듯 가슴을 처연하게 만드는 묘한 기운으로 둘러싸인 청령포를 어린 단종과 벗하며 걷는 심정으로 둘러본다. 어린 단종이 후세의 위로로 평안하기를 바라며. 청령포를 떠나 단종이 영면한 장릉(사적 제196호)으로 걸음을 옮겼다. 야사에 따르면 단종은 죽어 청령포를 휘감아 흐른 강에 시신이 버려졌으나 이를 마음 아파한 영월호장 엄홍도가 수습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종이 명예를 회복하는 데는 200년이 넘게 걸렸다.
    1681년(숙종 7), 숙종은 그를 일단 노산대군으로 추봉한 뒤 1698년(숙종 24) 정식으로 복위했고, 묘호를 단종으로 종묘에 부묘했으며 능호를 장릉이라 했다. 능역은 홍살문, 정자각, 단종비각, 재실 등을 갖추고 있어 여타 왕릉과 다름없고 예에 따라 난간석과 병풍석, 문인석은 있지만 무인석은 생략되었고 세자 묘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능역이 조성된 숙종 대에는 왕 단종이 아니라 세자 노산군이었기 때문이다. 다소 단출한 형태로 조성되기는 했으나 더없이 수려한 풍경을 한 장릉. 능침을 둘러싼 소나무가 모두 봉분을 항해 절을 하듯 묘하게 틀어져 있어 더욱 애틋함을 느끼게 한다.
 
(左)청령포  위치.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청령포로 133    문의. 033-374-1317   (右) 장릉 위치.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단종로 190  문의.  033-374-4215
 
자연이 빚은 신비로운 풍경과의 조우, 요선암과 요선정
    지질학적으로도 독특한 지형을 가진 영월은 곳곳에 특이한 지형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장소가 바로 요선암과 요선정이다. 영월의 강줄기 중 하나인 주천강 일대 약 200미터 구간에서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요선암 돌개구멍(천연기념물 제543호, 포트홀)을 관찰할 수 있다. 돌개구멍은 하천을 흐르는 유수에 의해 운반되던 자갈 등이 오목한 하상의 기반암에 들어가 소용돌이와 함께 회전하면서 기반암을 마모시키며 생겨난 지형으로 요선암 주변에 집중적으로 발달해 있다. 요선암(邀仙岩)은 신선을 맞이하는 바위라는 의미인데 조선시대의 문예가인 양사언이 평창군수로 재직하던 시절, 이곳의 경치를 즐기면서 암반 위에 ‘요선암’이라는 글자를 새겨 놓았다고 알려졌다.
 
장릉 위치.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단종로 190  문의.  033-374-4215

    신비로운 풍경을 감상하고 강줄기가 내려다보이는 산을 조금 오르면 요선정에 닿는다. 요선정은 단종을 복위한 숙종과 인연이 있는 곳으로 숙종이 영월 유배길에 대해 묻다가 정월에 빙허, 청허양루시(憑虛, 晴虛兩樓詩) 한수를 써서 당시 강원감사에게 내린 어제어필 시문을 주천현루인 청허루에 간직한 것이 시작이다. 이후 청허루가 화재로 소실되자 영조가 선왕의 시문을 그 자리에 보존하고자 다시 어제시를 써 중건된 창허루에 봉안했다. 그러나 창허루는 세월에 쇠락해 무너졌고 민가에서 보존하던 임금의 보묵(寶墨)을 봉안하고자 세운 정자가 바로 요선정이다. 주천강의 강줄기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요선정은 조선 왕들과 각별한 인연을 품고 세워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굽이쳐 흐르는 주천강과 더불어 오랜 세월 자리를 지키며 옛 시절을 더듬어보게 하는 공간이다.
 
보덕사  위치.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보덕사 34    문의.  033-374-3169
 
동안거의 고요한 시간이 흐르는 천년고찰, 보덕사
    눈 내린 겨울, 영월에서 만난 사찰 보덕사 역시 단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다. 신라 문무왕 8년(668) 의상조사가 지덕사라는 이름으로 세운 절이었던 이곳은 단종이 노산군으로 감등되며 유배될 때 노릉사(老陵寺)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단종의 능인 장릉의 원찰로 지정되면서 보덕사로 다시 개명되었다. 여러 번 이름이 바뀌는 사연을 담은 보덕사에는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겨울, 스님들의 동안거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소담스럽게 눈까지 내린 보덕사는 동안거와 너무도 잘 어울리는 풍경이 펼쳐졌지만 스님의 수련을 방해하지 않으려 경내를 두루 살펴볼 수는 없었다.
    보덕사의 자랑인 극락보전과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은 직접 볼 수 없었지만 이곳에서 꼭 봐야 할 보덕사 해우소를 보는 재미는 색달랐다. 1882년에 지어 140년이나 된 보덕사 해우소는 전통적인 사찰 해우소의 건축양식을 잘 갖추고 있다. 오래된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엿보이는 고풍스러운 건축물이 해우소라는 사실에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즐거운 여행의 추억을 갈무리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