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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중앙암에서

2021-02-17

문화 문화놀이터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중앙암에서
'글. 이정연'

    아침 공양시간은 이미 한참이나 지났다. 시장기를 면하려고 장군수에서 물을 몇 바가지나 마셨더니 걸을 때마다 뱃속에서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난다. 쉬리 몇 마리쯤 키워도 될 것 같다. 물 무게 때문인지 능선으로 올라가는 길이 몹시 힘들다. 친구들과 산행할 때 짐을 줄이려고 배낭에 있는 음식들을 죄 나눠 먹고 갔는데 배낭이 가벼운 대신 몸이 무거워지는 걸 생각하니 우습다. 배낭에 든 음식은 정 힘들면 산짐승들한테 던져 줄 수도 있지만 뱃속에 든 음식의 무게는 고스란히 내 몫이지 않은가. 혼자 산행을 하니 이런 기특한 깨달음도 얻는 구나.
    이 곳 정상은 바위틈을 지나야 무엇이든 볼 수 있다. 만년송을 보려고 해도 아득히 높은 바위틈을 지나야 하고 삼인암으로 가려고 해도 그렇다. 편편한 바위에 앉아 겹겹으로 두른 산들의 부드러운 능선을 감상하려고 해도 역시 좁은 바위틈을 지나야 한다.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란 시가 저절로 떠오르는 곳이다.
    일출 사진에 미련을 버리니 느긋함이 찾아왔다. 늠름한 만년송 아래 바위에 누워 새털구름이 천천히 흘러가는 파란 하늘을 오래 바라보았다. 척박한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푸르고 당당하게 자라는 만년송이 놀라워 자세히 보니 만년송은 처음부터 바위틈에서 자란 게 아닌 것 같았다. 큰 바위의 작은 틈에 씨앗이 떨어져 싹이 트고 자라나 뿌리가 아래와 옆으로 뻗어가면서 바위를 둘로 쪼개 버린 게 틀림없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 틈이 점차 벌어져 바위를 둘로 갈라놓은 것이다. 장군수의 지혜도 놀랍지만 여린 생명체의 놀라운 힘에 전율이 일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어찌 불가능한 일이라고 뜻을 접을 것인가.
 

사진출처. 팔공산은해사 홈페이지 (www.eunhae-sa.org)

    이번에는 극락굴로 가 본다. 애초에 지옥굴이라고 불렸다는데 어느 날부터 극락굴로 바뀌어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지나보고 나니 어느 것으로 불러도 괜찮을 만큼 지옥과 극락을 동시에 경험한 기분이다. ㅁ 자형 좁은 바위틈을 지나야 하는데 안을 보면 캄캄하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실제보다 틈은 좁아 보이고 웬만큼 체중이 나가는 사람은 들어가 볼 엄두가 나지 않겠는데 조강지처가 아니면 또 지나갈 수 없다고 한다. 아차 높낮이 조절을 잘못하면 큰 바위틈에 몸이 낄 판이다. 조심조심 양쪽 바위에 손을 짚고 때론 몸을 낮추고 때론 바위의 굴곡에 따라 몸을 높이면서 무사히 빠져 나왔다. 소음 못지않게 암흑도 견디기 힘든 고통이란 걸 처음 알았다. 밖으로 나와 환한 빛 가운데 서자 여기가 바로 극락이라는 생각이 든다. 산 아래로는 평화로운 영천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삼각대를 들다가 생각하니 또 슬그머니 장난기가 일어 이번에 굴의 반대 방향으로 한 번 더 들어갔다 나왔다. 극락굴을 두 번이나 통과했으니 난 이제 착한 사람이 된 것일까.
    비바람에 삭은 자리마다 이끼가 끼고 탑 주위에도 사람들이 쌓은 돌멩이가 또 하나의 탑을 이룬 이 3층 석탑은 언제 누가 세웠는지 궁금했는데 확인할 길이 없고 막연히 고려 때라고 전해져 오는데 이 탑도 중암암 대웅전처럼 말없이 영천시를 굽어보고 있다. 나는 얼른 작은 돌 하나를 찾아서 돌탑 맨 꼭대기에 올렸다. 그리고 이렇게 빌었다. ‘부처님 이 돌탑에 돌을 올린 사람 중에서 가장 힘든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세요!’
    내가 중암암에 오고 싶었던 이유 중 가장 큰 것을 들라면 해우소에 관한 재미있는 설화 때문이었다. 옛날 도반이셨던 세 스님은 각각 해인사와 통도사 중암암에서 수행정진하고 계셨는데 어느 날 함께 만나는 자리에서 서로 절 자랑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먼저 통도사에 계시던 스님이 ‘우리 절은 법당문이 어찌나 큰지 한 번 여닫을 때마다 문지도리에서 쇳가루가 한 말 서 되나 떨어진다.’ 고 하니 해인사 스님은 ‘우리 절은 스님이 얼마나 많은지 동짓날 팥죽을 쑬 때는 배를 띄워야 저을 수 있다.‘ 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데, 중암암 스님은 ’우리 절엔 해우소가 얼마나 깊은 지 정월 초하룻날 볼일을 보면 섣달 그믐날이라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고 하여 다함께 폭소를 터트렸다는 이야기다. 예쁜 보살님의 말에 의하면 MBC취재팀이 중암암 해우소의 깊이를 재보려고 줄자를 넣었는데 줄자의 길이가 73m밖에 되지 않아 측정하는데 실패했다고 하니 어찌 궁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일출을 볼 때부터 요의를 느꼈는데 꾹 참고 내려왔다.
문    제의 해우소는 3m 정도의 바위굴 끝 벼랑에 있다. 누가 일부러 알려주지 않으면 그냥 담쟁이덩굴이 덮인 바위일 뿐인데 입구에 작은 문이 두 개다. 안을 보니 컴컴하여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재래식이지만 불쾌한 냄새는 없다. 나는 마치 평생을 연구해 온 실험을 앞 둔 연구생처럼 조심조심 근심을 해결하였다. 해우소!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근심을 풀어주는 곳! 이름 한 번 잘 지었다는 생각이다.

    ‘정말 아무 소리도 안 들렸어요?’
    ‘그럼요.’
    ‘에이 진짜 그래요?’
    ‘글쎄 그렇다니까요.’

    몇 줄 여행기로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의 기회를 앗아가는 건 옳지 않은 일이다. 들어서 알게 되는 것, 사진으로 보아서 알게 되는 것, 읽어서 알게 되는 것은 진정한 내 것이 아니다. 내 것이 아닌 것으로는 지식 이상의 것을 알 수가 없다. 해우소가 정말 궁금하다면 직접 중암암에 올라 볼 일이다. 극락굴을 지나면서 욕심도 버려 보고, 만년송의 푸른 기상도 느껴보고, 3층 석탑 그 세월의 의미도 새겨보고 장군수의 지혜도 눈여겨 볼 일이다. 마지막으로 신라이후 단 한 번도 푸지 않았지만 배설물이 절벽 바위틈에서 자연 발효된다는 곳, 심지왕사와 뭇 훌륭한 스님들이 근심을 해결하던 유서 깊은 해우소에서 내 근심을 직접 한 번 해결해 볼 일이다. 들어서는 결코 알 수 없는 기쁨, 경험이 주는 소중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