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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여울’과 보리밭의 추억, 선돌, 유채꽃밭, 의병장 조헌…금강은 5월보다 푸르다

2024-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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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여울’과 보리밭의 추억, 선돌, 유채꽃밭, 의병장 조헌…금강은 5월보다 푸르다
'충북 레이크파크 르네상스 충북의 물길에 깃든 이야기를 찾아가다 (옥천Ⅲ)'

    옥천 북서쪽 끝 천상의 정원은 물 위의 정원이다. 금강 물줄기 대청호가 만든 천상의 정원을 거니는 신선 같은 사람들. 천상의 정원에서 나와 공곡재를 넘는다. 고갯마루 장승이 전설처럼 굽어보는 곳에 ‘금강여울’을 건너던 사람들이 살던 마을이 있었다. 청풍정 건너편 햇볕 반짝이던 막지리 백사장과 강가의 청보리밭도 대청호 물아래 잠겼다. 숨을 고르는 금강은 휴식 같은 장계관광지를 만들었다. 의병장 조헌 선생의 이야기를 싣고 흘러온 안남천을 품은 금강 물줄기를 거슬러 오르면 그곳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풍경이 있다. 금강 유채꽃밭 위를 나는 나비의 날갯짓에서 너울너울 반짝이는 금강여울이 보였다.
대청호가 만든 물 위의 정원
    옥천 북서쪽 끝 금강 물줄기가 만든 천상의 정원(수생식물학습원)은 물 위의 정원이다. 천상의 정원 앞을 지난 금강은 대전시 동구, 충북 보은의 접경으로 흘러간다. 어느 맑은 봄날 물 위의 정원을 거닐었다. 
    ‘반긴다’와 ‘품는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물 위의 정원은 말없이 보여줬고 무엇에 ‘안긴다’는 게 얼마나 푸근하고 따듯한지, 푸르러지고 싱그러워지는지 알게 해줬다. 
    매표소를 지나 카페 앞 맑은 햇살 고이는 야외 탁자에 앉았다. 쉼터이자 전망대인 그곳에서 대청호의 드넓은 품을 보았다. 신록으로 푸르게 물든 산줄기가 굽이도는 금강을 품었다. 홍도화 붉은 꽃잎도 그 풍경의 하나였다. 계단 위 전망대가 보여 그쪽으로 걸었다. 벚꽃잎이 눈송이처럼 흩날린다. 벚나무가 서 있는 곳은 전망대로 가는 계단 옆 절벽 위다. 전망대에 올라 벚나무를 굽어본다. 꽃잎이 공중에서 나부껴 그 아래 호수의 물결로 한참을 떨어진다. 풍경이 만든 소실점부터 모터보트 하나가 달려온다. 바람이 절벽을 타고 소나무 우듬지를 흔든다. 

 
천상의 정원에서 본 풍경. 소나무 가지 아래 먼 풍경이 놓였다.



    바위 위에 자란 소나무는 쉼터를 만들었다. 백년초가 모여 자라는 곳에서 길은 절벽을 휘감은 계단으로 이어진다.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만드는 사람들, 그들이 희망이다’라는 문구를 새긴 나무판이 계단 옆 나뭇가지에 걸렸다. 모퉁이를 돌아서 만난 건 바위틈에서 꽃피운 이름 모를 작은 꽃이었다. 그 꽃에 ‘희망’이라는 이름을 붙여보았다.
    ‘바람보다 앞서 가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나무판을 지나 대청호가 보이는 그네의자에도 앉아보았다. 언덕에서 내려와 줄지어 핀 튤립과 낭창이는 능수버들을 이정표 삼아 걸었다. 오얏꽃 핀 길을 지나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교회당을 가리키는 안내판 쪽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도 홍도화가 반긴다. 목책 밖은 대청호를 품은 절벽이다. 뒤돌아본 풍경에 벚꽃잎 흩날리던 절벽 위 전망대 풍경이 추억같이 반짝였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교회당 창틀에 호수의 풍경이 담겼다. 가보지 않은 길을 걷는 마음은 언제나 새롭다. 처음 왔던 그곳으로 가는 길을 해당화가 배웅하고 있었다.
‘금강여울’의 추억을 간직한 옛 이탄리 마을 이야기
    천상의 정원에서 공곡재를 넘기로 했다. 이평리로 가는 공곡재 고갯마루에 닿기 전에 길가의 작은 언덕에 올랐다. 그곳에서 금강의 물줄기가 어떻게 강가 마을을 품고 흐르는 지, 꿈 같이 걸었던 천상의 정원이 금강 대청호 물 위에 어떻게 떠 있는지를 보고 가슴에 새겼다.
    공곡재 고갯마루 서낭당 돌무지 앞에 장승이 서 있다. 두 기의 장승은 ‘금강여울’을 건너던 옛 이탄리 사람들이 살던 마을자리를 굽어보고 있었다. 그 마을은 대청호 물밑에 가라앉았고, ‘금강여울’을 건너던 사람들 이야기도 물 아래서 전설처럼 떠다닌다. ‘이탄리’의 더 먼 옛날 이름은 ‘배여울 마을’이었다. 순 우리말 이름, ‘배여울’ 참 정감어린 이름이다. 금강에 물이 줄면 여울을 건너다녔고, 물이 차면 배를 타고 건너다녔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이름이 ‘배여울’이었다. ‘배여울’을 ‘배일’이라고도 했다. 그것을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이탄(梨灘)’이 됐다고 전해진다. 이탄리는 훗날 이평리와 추소리로 나뉘었다. 

 
공곡재 고갯마루에 있는 장승과 서낭당 돌무지



    물에 잠긴 옛 마을 위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 마을 사람들이 공곡재 고갯마루에 장승을 세우고 서낭당 돌무지를 만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특정한 날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고 있다. 소 끌고 지게 지고 산 넘고 물 건너 옛 옥천 장터를 오가던 사람들로부터 전해지는 기원이다.
청풍정과 물 건너 막지리 백사장
    이평리 옆 석호리 청풍정은 금강이 빚은 풍경에 조선 후기 사람 김종경이 세운 정자다. 맑은 물과 바람이 머무는 곳이었다. 금강이 굽이쳐 흐르고 절벽에 부딪힌 물결은 곳곳에 소를 이루었다. 능수버들이 금강을 따라 10여 리(약 4㎞) 정도 이어졌다. 수몰 전 청풍정 부근 풍경이 그랬다고 한다. 이를 두고 옛 사람들은 군북팔경 중 하나로 꼽았다. 청풍정 건너편은 막지리 땅인데, 옛 막지리 이장님이 간직하고 있는 사진에 청풍정 건너편 강기슭 반짝이는 너른 백사장 풍경이 담겼다. 그 풍경마저 물 아래 잠겨 아쉬운 마음을 청풍정으로 불어오는 맑은 바람 한 줄기가 달래준다. 청풍정에는 조선 말 개화파 김옥균과 기생 명월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청풍정 뒤 바위에 ‘명월암’이라고 새긴 글씨가 남아 있다. 

 
청풍정. 정자 뒤 바위 물이 보이는 쪽에 명월암이라는 한자가 새겨졌다.



    막지리는 대청호가 생기면서 섬 아닌 섬이 됐다. 막지리를 오가는 배를 타면 5분 정도 걸린다. 안 그러면 산에 난 도로를 따라 먼 길을 돌아서 마을을 드나들어야 한다. 막지리 선장님(옛 이장님)과 지금 이장님을 만나 막지리 옛 이야기를 들었다. 막지리의 원래 이름은 ‘맥계(麥溪)’였다. 한글로 풀어쓰면 ‘보리개울’이다. 금강을 따라 5~6㎞ 정도 보리밭이 펼쳐졌다. 맑고 푸른 금강 물줄기와 넘실대는 청보리 물결, 생각만 해도 감동이다. 가만히 있는 마음을 움직이는, 힘 있는 풍경이었을 것이다. ‘맥계’가 ‘맥기’로 변했고, 훗날 지금의 이름인 ‘막지’가 됐다. 
    막지리 금강 백사장은 안내면 장계리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그 길이가 4㎞ 정도 됐다고 하니 10리 백사장, 이른바 명사십리였을 것이다. 강기슭 고운 모래밭, 명사(明沙)이기도 하고 강물 소리 품은 백사장, 명사(鳴砂)이기도 했을 것이다. 
    옛 백사장 고즈넉한 강기슭의 추억은 장계관광지를 지금도 쉼이 가득한 곳으로 만들었다. 굽이치며 흐르는 유장한 금강도 이곳에서는 숨을 고른다.       
    장계관광지 입구 금강 가 장계교에서 안내천이 금강이 되는 풍경을 보았다. 임진왜란 의병장 조헌 선생이 율곡 이이 선생의 정신을 잇는다는 뜻을 담아 지은 ‘후율당’의 이야기를 품고 흐르는 안내천이 금강과 하나 되는 곳이다.
의병장 조헌의 흔적과 금강 둔치 유채꽃밭
    장계교에서 금강을 거슬러 오르면 선사시대 무덤인 고인돌과 당시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여겼던 선돌을 볼 수 있는 안터선사공원이 나온다. 이곳 안터 마을에서 여러 기의 고인돌과 선돌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봐서 선사시대에 ‘큰돌문화’의 중심지였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안터선사공원에서 강물을 따라 더 올라가면 안남면 종미리 마을이 나오는데, 그곳 경율당 부근에도 선돌이 하나 있다. 
    종미리 선돌 부근에 있는 연주리 독락정 앞에서 임진왜란 의병장 조헌 선생의 무덤과 사당이 있는 마을을 지나온 안남천이 금강과 하나 된다. 

 
금강 둔치 유채꽃밭 부엉이 조형물



    의병장 조헌 선생의 무덤으로 가는 길, 신도비를 지나 조헌 선생을 모신 표충사로 향한다. 그길 초입에서 청보리밭이 사람을 반긴다. 길가 청보리밭이 바람에 넘실댄다. 조헌 선생의 ‘늘 푸른’ 기상이 선한 사람들을 반기는 소식 같았다. 붉은 목련꽃을 피우는 나무 옆 계단을 오르면 조헌 선생의 무덤이다. 표충사 마당에 펄럭이는 깃발의 배웅을 받으며 다시 나선 길에서 금강 둔치에 펼쳐진 유채꽃밭을 보았다. 금강 유채꽃밭 위를 나는 나비의 날갯짓에서 대청호 물에 잠긴 옛 이탄리 사람들이 건넜던, 너울너울 반짝이는 금강여울이 보였다.